흥미진진 교회사 이승찬 목사(상하이한인연합교회)
사랑하는 친구들~ 오늘은 종교개혁을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에 대해 알아볼게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루터와 츠빙글리의 경우 그 영향력이 주로 유럽 지역에 머물렀다면, 칼뱅의 가르침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어요. 대부분의 우리나라 교회도 칼뱅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죠.
종교개혁가의 길로…
칼뱅은 1509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누아용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신학과 법학 등을 공부하며 로마 가톨릭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종교개혁의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가톨릭의 눈 밖에 났죠. 칼뱅은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 바젤로 도망쳤어요. 바젤에서 칼뱅은 박해받는 조국의 종교개혁가들을 변호하기 위해 《기독교강요》를 집필했어요. 《기독교강요》는 성경의 진정한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교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이후 칼뱅은 아름답고 한적한 도시인 스트라스부르로 여행을 갔다가, 제네바에 잠시 머물렀어요. 이곳에는 기욤 파렐이라는 사람이 있었죠. 파렐은 《기독교강요》의 저자가 제네바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칼뱅을 찾아왔어요. 그리고 함께 제네바를 개혁하자고 권했죠. 칼뱅은 거절했으나, 계속되는 파렐의 권유에 결국 제네바에 남아 종교개혁 운동에 동참하게 됐어요.
나의 마음을 주님께 바칩니다
제네바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서 온 칼뱅이 개혁을 이끄는 것에 불만을 가졌어요. 그래서 칼뱅을 괴롭히다가 결국 제네바에서 쫓아냈어요. 한편, 제네바에서 쫓겨난 칼뱅은 자신이 원래 가고 싶었던 스트라스부르에 가서 책도 쓰고 목회 활동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3년이 지나자, 이번에는 제네바 교회가 칼뱅을 찾아와 다시 개혁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칼뱅은 힘들었던 제네바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백 번이고 십자가를 지는 편이 더 낫다고까지 하며 완강히 거절했어요. 그러나 파렐과 동료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설득하자, 결국 마음을 돌이켰어요. 이때 칼뱅은 파렐에게 이런 편지를 썼어요.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님을 돌이켜 생각하여 주님께 제물로 바치듯 내 마음을 즉시, 그리고 진심으로 드립니다.”
제네바로 돌아온 칼뱅은 올바른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기 위해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고, 교회 법령을 만들어 예배 의식과 교회의 제도를 정비하기 시작했어요. 또한 평신도와 목회자로 이루어진 ‘컨시스토리(Consistory)’라는 기구를 만들어서 제네바의 도덕 기준을 바로 세우고, 신학적 논쟁들을 정리해 갔어요. 이외에도 복지 기관의 일종인 ‘종합구빈원’과 ‘프랑스 기금’ 등을 만들어 사회 개혁에도 힘썼어요.
종교개혁의 완성자
칼뱅은 선배들이 선포한 종교개혁 가르침을 종합하고 보완했어요. 그의 《기독교강요》는 지금까지도 개혁교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죠. 우리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 칼뱅의 가르침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해야 해요.
한평생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았던 칼뱅을 기억하며, <큐틴> 친구들도 나의 마음을 즉시, 그리고 신실하게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소망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