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스토리 우은진 편집장
“따르릉, 따르릉” “네, 국제제자훈련원입니다.” “이번 CAL세미나에 참석하고자 합니다.”
지난 2003년 입사 후 몇 달 안 돼 매년 봄마다 제자훈련지도자세미나(이하 CAL세미나) 참가 신청자들의 전화를 받기 위해 국제제자훈련원 전 직원이 연성채플로 모였다. 이후 CAL세미나 전화 신청 매뉴얼 교육을 받은 후, 각자의 자리에서 오전 9시 정각이 되길 기다렸다.
드디어 9시 정각이 되자 모든 직원의 전화벨이 일제히 울렸다. 그리고 단 10분 만에 CAL세미나 참가자들의 신청이 끝났다. 이후 9시가 되자마자 전화했는데, 계속 “통화 중”이라 참석자 리스트에 못 올라간 목회자들의 항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후 서초구 전화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기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서초동으로 전화가 집중적으로 몰려 연락했습니다.”
이제는 추억이 된 CAL세미나 전화 신청은 인터넷 신청으로 바뀌었고,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40년이면 강산이 변해도 4번은 변하는 시간이다. 고(故) 옥한흠 목사는 처음에는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님의 대사명 말씀을 그저 전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지, “제자를 만들라”는 말의 깊은 뜻을 잘 몰랐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1971년 한 명밖에 없는 성도교회 대학부를 맡으면서 “제자를 만들라”는 말씀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1965년부터 1975년까지 대부분의 한국교회 대학부는 침체 상태였다. 그런데 청년들이 모이는 한 곳이 있었다. 바로 선교 단체였다. 그곳에는 청년들이 벌떼처럼 모였다. 한쪽에는 청년들이 떠나는데, 다른 한쪽은 모였다. 이에 옥 목사는 선교 단체에 청년들이 모이는 이유가 제자훈련 때문임을 알고, 이때부터 제자훈련에 눈을 떠 기성 교회 현장에 제자훈련을 도입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통해 제자훈련의 신학적 이론을 정비해 사랑의교회를 개척하고, 6년간 제자훈련의 대상을 청년에서 성인으로 바꿔 그 열매를 《평신도를 깨운다》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이후 사랑의교회 현장을 열어 달라는 수많은 목회자의 요청으로 1986년에 CAL세미나가 시작됐다.
한편, 그가 미국 유학 후 또 한 번 제자훈련의 씨를 뿌린 곳이 바로 내수동교회 대학부다. 당시 오정현 목사가 섬기던 내수동교회 대학부 수련회에 옥 목사가 다섯 번이나 주 강사로 참여하면서 내수동교회 대학부는 성도교회 대학부보다 더 제자훈련으로 붙타올랐다.
오정현 목사는 라브리 공동체 비슷한 공동체 생활까지 대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용산 병원전도에도 헌신했다. 내수동교회 대학부의 제자훈련은 지금도 유지될 정도로 단단한데, 이름만 대면 아는 수많은 인재를 한국교회와 사회에 배출시켰다.
이처럼 CAL세미나의 산증인이자 두 강사인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는 성도교회 대학부와 내수동교회 대학부에서 각자 제자훈련을 실험하고 배우며 성장했다. 즉 두 대학부의 제자훈련은 CAL세미나의 뿌리가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목회자는 사랑의교회와 남가주사랑의교회를 개척해 수많은 성도에게 “제자로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두 교회에 큰 부흥으로 응답하셨다. CAL세미나는 성령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이다. 그렇기에 지난 40년간 CAL세미나가 쓰임받은 것이다. 이제 땅끝까지 제자 삼는 사역이 전파되기 위해 CAL세미나의 과제가 무엇인지 진단해 봐야 한다.
이에 <디사이플> 4월호에서는 “평신도에서 목회자까지 깨운 CAL세미나 40주년의 의미와 전망”이라는 기획 주제로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의 대담을 통한 CAL세미나 40주년의 의미와 비전을 들어보고, CAL세미나의 역사와 앞으로 도전 과제들을 진단했다. 또한 CAL세미나 수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와 《온전론》 서평, CAL세미나 수료자들의 감회를 담은 인터뷰를 통해 CAL세미나 40주년의 의미를 진단해 봤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