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2026년 03월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아펜젤러, 참된 사랑을 실천한 빛나는 삶

흥미진진 교회사 김예성 목사(사랑의교회)

서울시 정동에 위치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는 “욕위대자(欲爲大者) 당위인역(當爲人役)”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요. 이 글은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마 20:26~28)는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해 한문으로 번역한 거예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교육 기관인 배재학당에는 설립자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가치관이 녹아 있어요.

 

한국의 역사를 바꾼 1885년의 부활절

헨리 아펜젤러는 1858년 2월 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수더튼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읽어 주시는 성경을 들으며 자란 그는, 복음이 없는 땅에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꿈을 꿨어요. 드류신학교를 졸업한 아펜젤러는 미국 감리회 해외선교부 소속의 선교사가 돼, 아내와 함께 1885년 2월 2일,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어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일본에서 준비하고 있는 다른 선교사님들과 함께 한국으로 향했어요. 이 배에는 지난 호에서 만나 본 언더우드 선교사님도 함께 타고 있었어요.

1885년 4월 5일, 이날은 부활절이자 한국교회에 있어 역사적인 순간이었어요. 아펜젤러, 언더우드,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한국에 최초로 복음을 들고 입국한 날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들이 배에서 내리려는 순간, 미국의 외교관이 급히 달려왔어요. “선교사님! 지금 이곳은 정치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 젊은 여성이 들어오기에는 매우 위험해요. 잠시 일본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오는 게 좋겠어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임신 2개월째였던 사모님과 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몇 달 뒤, 나라가 안전해지자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래서 언더우드, 스크랜턴 선교사님과 함께 아펜젤러 선교사님을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로 보고 있어요.

 

교회와 학교, 다음 세대를 변화시키다!

당시 한국에서 남을 섬기는 것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미국에서 온 푸른 눈의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이상한 말을 했어요. “남을 섬기는 사람이 정말 큰 사람이며, 높임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는 이 학교를 통해 다른 사람을 섬길 이들을 키워 내려 합니다.”

당시 고종 황제도 학교 설립을 기뻐하며, ‘인재를 기르는 집’이란 뜻의 이름을 직접 지어 줬어요. 이렇게 세워진 ‘배재학당’은 지금까지 배재중고등학교로 이어지고 있어요. 예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세워진 배재학당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고 인생이 변화됐어요. 지청천, 여운형 등의 독립운동가는 물론, 많은 졸업생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헌신하며 사회에 큰 영향을 줬죠.

한편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집을 한 채 사서 교회를 설립했어요. 이 교회가 1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감리교 최초의 교회인 정동제일교회예요. 정동제일교회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성찬식이 베풀어졌고, 처음으로 주일학교 찬양대가 조직됐죠.

또한 정동제일교회를 통해 번역된 신약성경이 각 교회로 퍼졌어요. 그리고 정동제일교회는 빛이 보이지 않던 식민지 시절, 수많은 청년이 소망을 발견하는 인재 양성소였어요. 이 교회의 파이프 오르간 속 작은 공간에서 독립 선언서 외에도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문서가 비밀리에 제작돼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도 했어요. 정동제일교회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눈물과 땀이 서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죠.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빛나는 마지막

1902년, 목포로 가던 배가 다른 배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어요. 이 배에는 목포에서 열린 성서번역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난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있었어요.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이화학당 여학생을 구출하기 위해 애쓰시다가 안타깝게 돌아가셨어요.

이처럼 아펜젤러 선교사님은 선한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듯, 낯선 땅 한국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며 참된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어요. <큐틴> 친구들도 내가 값없이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삶에서 실천하는 제자가 되기를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