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탐구 박원범 목사(사랑의교회)
요즘 세대는 한정판에 빠르게 반응한다. 한정판 신발, 한정판 피규어를 사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줄을 서고, 하루 일정을 비우며 ‘기회’를 붙잡는다. 왜냐하면 한정판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정판에는 민감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기회’에는 둔감하다. 말씀을 읽다가 마음에 찔림이 올 때도, 죄가 드러나는 순간에도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나중에 하지 뭐.” 성경에도 이와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은혜의 한복판에 있지만, 은혜의 날에 회개하지 않은 사람, 요압이다.
옳다는 확신에 붙잡힌 요압
압살롬은 아버지를 배신하고 왕위를 찬탈하려 했다. 그러나 다윗은 군사들에게 분명히 명령한다.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 18:5). 이 명령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대하시는 방식과 닮아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자비의 문을 열어 두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압은 이에 순종하지 않았다. 전투 중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공중에 매달린 압살롬을 발견하자, 요압은 주저하지 않고 창을 들어 그를 찔러 죽인다(삼하 18:14). 요압의 행동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반역자를 제거해야 나라가 산다. 이것이 옳다.”
이처럼 요압은 빠르고 결단력 있으며, 전쟁과 정치에 능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러나 그의 ‘옳음’은 왕의 마음을 짓밟고,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한 선택이었다. 요압은 자기 의와 자기 판단을 하나님보다 우위에 둔 것이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옳다’라는 확신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자기 의와 판단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진정한 회개로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소망한다.
왕의 마음을 모르는 요압
압살롬이 죽자 다윗은 통곡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삼하 18:33). 이 울음은 아버지로서의 슬픔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들이 낳은 비극을 돌아보는 회한,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깊은 자책,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그러나 요압은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요압은 왕에게 나아가 그의 슬픔이 백성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요압은 정치적으로 옳은 말을 했다. 지도자는 백성 앞에 나와 승리를 선포하고, 사람들을 다독여야 한다.
그러나 요압은 왕의 마음을 읽지 못했고, 그 마음을 만지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도 관심이 없었다. 요압은 평생 다윗을 위해 싸운 충신이었지만, 정작 다윗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모습은 어떠한가? 요압처럼 집과 학교, 교회에서 내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의 마음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는 요압
요압의 마지막은 그의 삶 전체를 해석하는 핵심 장면이다. 요압은 다윗이 세운 군대 장관 아마사를 죽이고, 정치적 생존을 위해 싸운다. 결국 심판의 날이 오자, 그는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해 제단 뿔을 붙잡는다(왕상 2:28).
제단 뿔은 죄인이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성경은 요압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켰다고 기록하지 않는다. 결국 그는 회개 없는 형식만 붙잡은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요압은 평생 다윗의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수없이 많았고,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돌이킬 기회였던 은혜의 날 동안, 자신의 감정과 복수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은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요압을 반면교사 삼아, 기회를 미루지 않고 회개하며, 은혜를 사모하는 십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