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리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이스라엘의 최북단 국경 도시
가버나움에서 90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48km를 오르면 아벨 벧마아가가 있다.
메툴라의 전망대에 서면 북쪽에서 흘러오는 이욘강이 성을 감싸안은 모습이 보인다. 헤르몬산에서 흘러오는 이욘강은 메툴라에서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데, 현재 이스라엘 최북단 국립 공원이다. 이 폭포를 따라 남쪽으로 2.5km 내려가면 아벨 벧마아가가 있는데, ‘마아가의 집안 초원’이라는 이름 그대로 성 주변에 넓은 초장이 있다.
아프리카·아시아·유럽의 갈림길 물의 성
아벨 벧마아가는 ‘물의 초원’이라는 아벨마임으로도 불린다. 이욘강은 요단강 3대 물 근원지 중 하나인 스닐강과 합쳐져 남쪽으로 내려가며, 두 번째 요단강 근원지인 단에서 내려오는 강과 합쳐진다. 배를 타고 이 강을 내려가다 보면, 세 번째 요단강 근원지인 동쪽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내려오는 강물을 만나면서 완전한 요단강을 이룬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해변 길은 남쪽에서 올라와 북단인 아벨 벧마아가에서 동쪽으로 꺾인다. 해변 길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길이다. 또한 이 성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면 베니게의 두로와 시돈을 거쳐 지중해, 더 멀리 유럽까지 갈 수 있다.
세바의 반란으로 유명해진 어머니 같은 성
이 성은 지리적인 연유로 이스라엘 초창기부터 성벽이 둘려 있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윗성으로 돌아올 때, 누가 왕을 모시고 앞장설 것인지를 두고 지파 간에 갈등이 일어났다. 이때 다윗이 유다 지파 편을 들자, 베냐민 지파의 세바가 ‘이새의 아들에게 받을 유산이 없다’라는 말로 다윗을 반대하며 북쪽에서 사람을 모았다. 이 말은 여로보암 반란 때 했던 말과 같은 말로, 세바는 가장 북쪽 아벨 벧마아가성에서 시간을 끌면서 추종 세력을 모으려 했다.
다윗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급히 군대를 보내 반란군을 진압한다.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려 할 때, 요압은 아벨 벧마아가 성벽보다 높은 토성을 쌓아 공성하려 했다. 아벨 벧마아가성은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지점이라 성안에 지혜 있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은 ‘문제가 있으면 아벨에 가서 물으라’ 할 정도로 지혜자가 많은 성이요, 어머니 같은 성이었다(삼하 20:18~19).
아벨 벧마아가의 한 지혜로운 여인은 먼저 다윗의 군사령관 요압을 설득하고, 이후 성 사람들을 설득해 세바를 죽여 보냄으로써 아벨 벧마아가는 안전하게 보존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유다 왕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북이스라엘을 쳐 달라고 부탁했을 때, 제일 먼저 피해를 본 성이 이욘과 단, 아벨 벧마아가였다. 또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즈음에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 지역 사람들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다.
솔로몬은 이 성을 연상하듯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그의 지혜로 그 성읍을 건졌으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전 9:15)라고 말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인데, 여호와 경외를 잃은 성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