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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3월

똘레도(Toledo)의 엘 그레코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스페인의 똘레도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곳이다. 꽤 오랫동안 스페인의 수도였던 이곳은 1560년에 국왕 펠리페 2세에 의해 다시 수도로 정해졌으나 곧 한파와 화재로 도시가 크게 훼손되면서 다음해인 1561년에 마드리드로 수도가 바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똘레도 대성당을 비롯해 옛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똘레도라는 도시에서 오랜 기간 작품 활동을 하던 화가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의 크레타 섬 출신이기에 얻은 ‘그리스인’이라는 별명에서 비롯됐다. 그는 베네치아로 가서 티치아노로부터 강렬한 색채와 명암 처리의 화법을 배웠고, 이후 스페인으로 넘어와 궁정화가로 근무하면서 똘레도의 여러 성당의 성화들을 제작하게 된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 화가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그의 업적은 인상주의와 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균제미를 추구하는 르네상스의 미술과는 다른 강렬함과 변형을 추구했으며, 심지어 추상에 이를 정도의 과감한 화면 처리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많은 작품이 있지만 여기서는 두 점만을 보고자 한다.
엘 그레코는 똘레도를 사랑해 그 도시 자체를 그리기도 했다. 아직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도시 똘레도가 그에 의해 작품화된 것이다. 엘 그레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똘레도의 전경과 지도>는 똘레도를 마치 천국의 도시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성모와 함께 천사들이 하강하고 있다. 중앙에 이 작품을 의뢰한 주문자의 성 세례요한병원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으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소년이 매우 자세한 도시의 설계도를 들고 있다. 이 도시에 대한 작가의 자랑과 애정에 의해, 구름이 넘실대는 변화무쌍한 하늘과 한눈에 들어오게 그려진 똘레도는 주님께 바쳐진 신앙의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이 도시를 배경으로 그린 또 다른 작품은 위쪽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다. 이 작품은 산토 토메 성당이 새로이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엘 그레코에게 위촉해 그려진 것이다. 약 250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독실한 신자 오르가스 백작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그림은 후손들이 이 그림으로 인해 기금을 내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오르가스 백작이 임종 시 후손들과 지역 유지들에게 이 성당을 계속 후원하라고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엘 그레코는 화면 하단에 백작을 매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상단에는 오르가스 백작의 영혼을 받아들이고 있는 천상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하단에는 화려한 사제복을 정교하게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묘사력이 뛰어나며, 그의 매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탁월하다. 천상에는 백작의 영혼을 받기 위해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시는데, 구름과 같은 반추상화된 표현과 짜임새 있는 구성은 당시의 수준을 뛰어넘어 근대적인 감각을 보이고 있다.
이 외에도 똘레도에는 엘 그레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똘레도 대성당과 프라도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많이 걸려 있으며, 그가 생활하던 곳도 박물관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끝없이 주님을 바라보며 성화를 그렸던 그는 분명 행복한 화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jungheehans@hanmail.net

엘 그레코, <똘레도의 전경과 지도>, 약 1610년, 캔버스에 유화, 엘 그레코 박물관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1586~1588년, 켄버스에 유화, 산토 토메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