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옥한흠 목사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에 창밖으로 쏟아지는 함박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난다. 꽤 건실한 회사를 운영하던 사람이 한겨울에 부도를 맞게 됐다. 집은 경매에 붙여졌고, 가지고 있던 돈도 직원들에게 모두 나눠 주어 남지 않았다. 부족한 것 없이 단란했던 가정에 닥친 고난으로 그는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집안은 생기가 없어지고, 숨 쉬는 것조차 답답할 정도로 분위기가 삭막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이었다. 조용하던 그의 아내가 갑자기 “여보, 눈 오는 것 좀 보세요! 우리 이러고 앉아 있지 말고 나가서 같이 사진 찍어요!” 하며, 어린아이처럼 들떠 그를 잡아끌었다. 평생 아내와 눈밭에서 놀아본 적이 없었지만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나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눈싸움을 했다. “아들이 눈 쌓인 나무를 흔들자 그 밑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를 맞으며 행복에 젖었던 그때, 아내와 함께 눈덩이를 굴리며 신나게 보냈던 그 순간….”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그 시절을 회상하던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서 남편을 격려하고 우울해지지 않도록 도우려 했던 아내의 노력은 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참 훌륭한 아내구나, 위대한 여인이다’ 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서로 사랑하려면 서로 위로해야 한다. 실패자, 배신자, 비겁자가 되어 버린 사람들은 자신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상처와 좌절을 겪는다. 그들이 주저앉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다.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위로의 말, 격려의 말 한마디가 사랑하는 마음 전부를 대변할 수 있을 때가 정말 많다.
이상한 일은, 남자들끼리 모이면 눈물이 참 많다는 점이다.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는 체면 차리느라, 또는 남자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눈물이 나도 참고 견디지만, 남자들끼리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우는 사람이 많다. 남자들은 ‘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라는 무서운 기운이 감도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한다. 그렇게 하루 종일 정신적 폭력에 상처를 입고 주눅 들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감정의 날이 시퍼렇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아내는 집에서 ‘오늘 남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나’ 하며 하루 종일 애간장을 태운? 그러다가 저녁에 남편이 들어오면 가슴 졸이며 표정부터 먼저 살핀다. 이때는 남편은 물론 아내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때이다.
그러나 경험상으로 보면 가족끼리는 위로하기가 쉽지 않다. 아예 먼 데 있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는 “걱정하지 말게. 곧 지나갈 태풍이야” 하고 말하기 쉽지만, 함께 사는 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이 일이 꼬이고 잘 안 되어 갈 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때, 터질 것 같은 긴장을 느낄 때 한두 번은 위로해 줄 수 있지만 전심을 바쳐서 위로하려고 나를 비우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가족끼리 나누는 한마디의 위로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서로 사랑하려면 용서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는 가까운 사이에 주고받기 쉽다. 특히 가족에게 상처 받기가 가장 쉽다. 먼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입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끼리 수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상처가 나을 만하면 또 상처를 받게 된다. 나도 모르게 상대의 상처 난 자리를 또 긁어 피를 내고야 만다. 편안하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상처를 받아도 쉽게 아물고, 서로 상처를 덜 준다.
그러나 살기 어려워지고 생활이 빠듯해지면서 긴장이 고조되면 나도 모르게 마구 상처를 주고 만다.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고, 아이들에게 나무라면서 상처를 준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용서받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면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야 하는 정신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면 진정으로 용서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는 위기를 만났을 때 증명할 수 있다.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가정 안에 웃음이 사라져 버렸을 때, 또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터졌을 때 평소에 용서했다고 생각한 일들을 실제로는 용서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이미 용서했으면 절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상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서 환경이 어려워지면 서로 괴롭히고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경제적인 위기를 만나 가정이 깨지는 진짜 원인이 돈 문제만은 아닌 경우가 많다. 사실 평소에 용서하지 않고 있던 마음의 응어리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서로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이다.
서로 용서하고 끌어안던 가정이라면 어려운 위기가 닥치더라도 매일 밝은 얼굴로 대처해 나갈 수 있다. ‘용서는 공동체 생활의 접착제’라는 말이 있다. 가족끼리 잘못된 결과를 두고 서로 탓하며 용서하지 못한다면, 가정이라는 공동체는 끊어지고 만다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용서하면 공동체가 절대 흩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용서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이 흩어지고 만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실은 한 사람도 감히 완전한 사랑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보다 그나마 쉬운 용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려면 인내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사랑을 할 때 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험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면서 함께 참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모른다.
스위스에 있는 알프스 터널은 얼마나 긴지, 한 번 통과하려면 30분 이상 걸린다. 옛날에는 기차가 연기를 뿜으면서 달렸기 때문에 일단 터널 속에 들어가면 승객들은 모두 손수건으로 코를 막아야 했다. 아무리 문을 꽉꽉 닫아 놓아도 온 사방에서 연기가 마구 들어왔다. 그렇게 조금만 있으면 코 안이 새카맣게 되는데, 터널을 빠져나올 때까지 30여 분을 연기를 마시면서 가야 했다. 참으로 괴로운 여행이다. 하지만 그것을 참을 수 없다고 기차표를 찢어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사람도 없다. 모든 사람이 ‘조금 있으면 밝은 햇살이 비치는 입구가 나올 거야. 이제 한 10분만 더 가면 돼!’ 하고 참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게 참은 경험이 있다. IMF 한파가 우리나라를 덮쳤을 때 우리는 한동안 덜 먹고 절제하고 허리띠를 졸라맸으며, 여러 가지 불편을 참아냈다.
“아빠, 우린 참을 수 있어요. 염려하지 마세요.”
“여보, 나 괜찮아요. 전에 입던 옷 다시 손질해서 입으니까 이렇게 예쁘잖아요!”
“아빠, 직장에 못 가시는 것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한두 달 푹 쉬세요. 얼마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겠어요?”
이렇게 서로 참고 견디는 것이 우리 가정을, 우리 사회를 위기 속에서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사랑은 왕궁에서뿐 아니라 오두막집에서도 산다. 끝까지 사랑하기 위해 위로하고, 용서하고 참아 보자. 이 사랑을 평생 실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