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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에게 ‘비전의 길’을 만들어주고 싶다!

2012년 02월 우은진 기자

인물 : 비전스타트운동본부 대표 최광렬 교수

비전, 꿈, 사명, 생명. 이런 단어만 들어도 아직 가슴이 설렌다면 당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는 10대, 20대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암울한 환경과 상황으로 인해 꿈과 비전을 상실한 청춘들이 많다. 밝은 미래라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이끄는 비전스타트운동본부 대표 최광렬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 그는 15년간 걷지 못했고, 언어장애가 심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꿈과 사명으로 똘똘 뭉친 열정의 비전메이커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꿈을 전달할 수 있었을까? 그를 만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뭔가를 당장 시작해야 할 것 같은 꿈틀거림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른다.
비전스타트운동을 통해 1,700명의 제자들을 키우고, 그들로 하여금 가슴 뜨거운 삶을 살게 한 최광렬 교수. 그의 어두웠던, 그러나 그 터널을 빠져나와 밝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는 그의 인생길을 동행해 보았다.


가난과 장애를 지녔던 청소년기, 자살만 생각하다
산수유로 유명한 지리산 구례 산동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산에서 떨어져 걷지 못하게 되었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치료 시기를 놓치고 한 달 뒤 지역 의원에 뒤늦게 입원했지만, 엉치뼈가 위골되어 썩고 고름이 차서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해, 급기야 어머니와 헤어졌고, 두 동생은 고아원으로 보내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 역시 여수 애양원으로 보내져 2년간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애양원으로 보내진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당시 애양원에서 그는 도성래 선교사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아 상처가 더 이상 도지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도와 찬송을 통해 작은 꿈과 희망을 품게 되었다. 마치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이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지만 꿈을 간직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2년 뒤 다시 어머니와 만나 제2의 고향인 안양에 정착하게 된 그는 목발을 짚고 40분이나 걸어가야만 했던 학교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또 소풍과 체육시간, 수학여행, 저전거 등의 단어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의 놀림과 시선은 물론,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보면 목발은 어느새 저만치 가 있곤 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이다 보니 좌절된 상황으로 인해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면’이라는 내용의 일기를 매일 썼다. 연탄가스로 자살을 기도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주인집 형의 전도로 가게 된 교회에서 그의 모든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도와 찬송은 그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마침 교회에서 하는 말씀암송대회에서 요절상을 받기도 했는데, 그때 암송해 힘을 얻은 말씀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와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였다. 그는 그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처지를 이겨나가고자 노력했다.
한 번은 영어숙제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종이 위에 ‘자살’이라는 단어만 996번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자살을 거꾸로 읽으니, ‘살자’라는 단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내가 끝내 너를 살게 하리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 몸으로 느껴졌다. ‘그래, 예수님의 고통에 비하면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다시 살기로 굳게 결심했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15년 만에 다시 걷게 되다
친구들이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 있을 때면, 그는 심부전증을 앓고 있는 친구와 함께 교실에 남아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그 친구는 교회 고등부 회장을 할 만큼 믿음이 좋은 친구였다. 한 번은 그 친구가 “광렬아, 우리 둘 중에 한 명을 주님이 데려가시면 남은 친구가 먼저 간 친구의 꿈을 이뤄주기로 하자. 나는 청소년사역자가 되는 게 꿈인데, 너는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그때 그는 ‘약사’라고 답했다. 매일 50알의 약을 먹으면서 겪는 고통으로 인해 약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육신의 고통은 깊어만 갔고 수업을 듣다가 양호실에 가는 일도 점점 많아졌다. 끝내 고등학교 2학년 때 통증이 심해져서 자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기도원에 들어가 ‘단 하루만이라도 목발 없이 걷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후 그는 갈급한 마음에 여러 군데 편지를 썼는데,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써서 다리수술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 결과 당시 미국에서 성공한, 그러나 아직 실험단계였던 인공고관절 수술을 국내 최초로 국립의료원에서 받게 되었다. 10시간 넘게 진행될 정도로 힘든 수술이었다.
고통스런 재활기간이 끝나고, 그는 안양 평촌 뒷산에 올라가 목발을 멀리 던지며 울부짖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15년간 걷지 못했던 자신이 비로소 두 발로 걷게 된 순간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내렸다. 인생의 2장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기적을 상식처럼 행하시는 주님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어장애 있는 사람이 목사가 된다고?
공부를 다시 시작한 그는 검정고시를 통해 중앙대 약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당시 그에게 재능이나 꿈, 비전에 대해 묻는 사람이 없었다. 졸업 후 유학준비를 하던 그는 고등학교 때 체육 시간마다 서로를 위로하던 친구 생각이 났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주 찾아오셨던 담임선생님을 뵙기 위해 찾아간 고등학교에서 옛 친구를 떠올렸지만, 그 친구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자신이 떠나면 대신 청소년사역자가 되어달라고 했던 친구와의 약속이 생각났고, 그것이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6개월간 가슴앓이를 한 후 그는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 이유는 ‘너처럼 말 더듬는 사람의 설교를 누가 듣겠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는 못 걸을 뿐만 아니라 언어장애도 심해 국어 시간에 책 읽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 정도였다.
그는 기도원에 가서 약학자나 과학자의 길을 가지 않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신학교에 가니, 언어장애를 치유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주님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는 말씀을 주시며, 청소년사역자의 길이 친구의 소명이 아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셨다.
그는 운전도 못하고 기타도 못 쳤지만, 자신의 한계를 벗어버리고 그 대신 강력한 소명을 안은 채 기도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새벽마다 교회 부흥회에 가서 기도했다. 그렇게 새벽기도를 드리던 어느 날, 몇 시간 동안 방언기도를 했는데, 더듬지 않고 말이 부드럽게 나오는 게 아닌가? 그에게는 주님이 자신의 언어장애를 치유해 주신 것이 걷게 된 것보다 더 큰 기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는 믿음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또다시 체험했다.
그는 신학교 2학년 때부터 청소년사역에 헌신했다. 독서모임, 문서사역, 거리찬양 등 청소년모임을 만들어 자신의 청소년 시절처럼 상처받고 절망한 아이들에게 다가가 꿈을 심어주고 꿈을 찾아주기 시작했다.


청소년·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비전스타트
2002년 8월 그는 정체성의 위기와 가치혼란, 그리고 비전의 부재 속에 살아가는 차세대 아이들에게 비전과 인생의 목적을 심어주고자 16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비전스타트운동을 시작했다.
이는 그의 처절했던 어린 시절이 큰 경험이 되어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비전스타트운동이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에게 건강한 자아상과 가치관을 심어주고, 그들을 인생의 목적과 비전을 품은 인물로, 그리하여 사회와 공동체, 나라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는 인물로 세워나가기 위함이라고 소개한다.
이를 위해 15년째 20여 명의 소수 아이들을 대상으로 비전캠프학교를 여는 한편, 비전 퍼스펙티브(Vision Perspective), 비전축제, 비전나이트(Vision Night), 비전스케치, 비전플러스, 비전투게더, 빕스, 비전 하프타임, T-그룹 등의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 좌우명 갖기, 사명선언문 작성하기, 미래 이력서 쓰기, 자성 예언 쓰기, 큰바위얼굴 품기, 좋은 습관 만들기, 건강한 자아상 만들기, 독서의 생활화, 평생 비전 세우기, 경건과 절제의 삶 등의 10가지 실천사항을 주고 있다.
실제로 그는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꿈을 품고 인생을 개척해 나갈 것을 바인더, 책, 성경이라는 세 가지 도구로 도전하고 있다. 그의 비전캠프를 거쳐 간 1,700명의 제자들이 국내외에 리더급으로 포진하고 있다. 수많은 대학생들이 그를 통해 도전받아 장학생이 되고, 전국대회에 나가 상을 타며, 국외 유수의 대학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그는 “가슴이 허할 때 아이들과 같이 울어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고통스러웠던 경험담을 들려준다”며 “내 안에 계신 그분이 15년간 청소년사역자로 달려오게 하셨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세 분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간증한다. 첫 번째는 에벤에셀의 하나님, 즉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었다. 두 번째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외로울 때마다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세 번째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예비하시고 훈련을 통해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셨다. 그는 세 분의 하나님이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자신의 인생길에 만나주셨다고 고백한다.
이제 19살에 받았던 인공관절을 교체할 시기가 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그때의 인공관절로 버텨온 것도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 은혜를 받는다고 말한다. 유리가 그 뒤에 발라진 수은 때문에 거울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은 비록 초라하지만 주님의 은혜를 덧입고, 이렇게 ‘변화’와 ‘비전’의 두 기둥을 붙잡으며 청소년사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인다. 메모광에다 암송왕인 그는 성경의 많은 말씀 중 두개의 말씀 구절을 가장 좋아하는 말씀으로 꼽았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Vol.85 201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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