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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꿈들이 현실로, 꿈 너머 꿈을 자주 꾸세요”

2011년 07월 우은진 기자

인물 : <고도원의 아침편지>의 고도원 주인장

매일 아침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하루의 문을 여는 사람이 이제 250만 명이 넘어섰다. 10년 넘게 아침마다 독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부치고 있는 아침편지의 주인장 고도원 씨(아침문화재단 이사장, 용인 안디옥교회 장로). 지금은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고유명사처럼 굳어졌지만, 사실 고도원은 그의 실명이다. 이름의 특이성은 한 번쯤 <아침편지> 독자들로 하여금, 편지를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게 만든다. 실제 그의 외모는 이웃집 아저씨 같다. 거기에 가끔 한 번 ‘씩’ 하고 웃으면 마음 속내까지 내보이고 싶을 만큼 편안하다.
젊은 시절에는 못생긴 외모 때문에 별명이 ‘이조사’(이주일과 조영남 사이)였다고 한다. 요즘 그가 스스로 밀고 있는 별명은 ‘길박사’(길용우와 박상원 사이)다. 그의 꿈이 그의 외모까지 변모시킨 것 같다. 그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자신의 꿈들을 소개할 때마다 그 꿈들은 신기하게 아침편지 250만 명 독자들의 꿈으로 변화되고 있다.
몽골에서 말을 타고 저녁에는 별을 보고, 수백만 명의 기부로 청주에 ‘깊은 산속 옹달샘’이라는 명상공동체까지 꾸렸다. 이제는 세계일주 여행의 꿈도 도전한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꿈들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고, 그는 그 꿈 너머 꿈을 계속 꾸고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주인장에게서 그 꿈 너머 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버지가 준 유산 세 가지 - 책, 눈물, 기도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아버지 고은석 목사이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그의 아버지는 17개 교회를 개척한 가난한 목회자였다. 시골 교회 목사 아들로서 그의 집안은 늘 궁핍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도시락을 싸간 적이 없었을 정도다. 그러나 7남매의 넷째였던 그는 아버지로부터 잊지 못할 세 가지 유산을 받았다. 그것은 책과 눈물, 그리고 기도이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의 손에서 ‘책’이 떠난 것을 못 봤다고 한다. 독서광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책을 읽고 밑줄 그어 오라는 숙제를 자주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나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책이다. 책을 읽고 독서 카드로 정리해 검사까지 받았다. 책을 읽지 않으면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당시 아버지를 원망하고 반항도 했지만 그 회초리를 통해 그는 ‘인생의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훗날 <연세춘추>와 <뿌리 깊은 나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청와대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 등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 것도 이런 독서훈련이 기반이 되었다.
두 번째로 받은 유산은 ‘아버지의 눈물’이다. 시골 교회를 개척한 아버지는 여러 번 교회를 지었고, 짓고 나면 교회 내 분란이 생겨 무수히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버지가 개척하고 지은 17개 교회에는 아버지의 눈물이 고스란히 고여 있다. 그 눈물은 그대로 인간 고도원의 영혼의 우물이 되었고, 지금의 ‘깊은 산속 옹달샘’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2010년에 문을 연 ‘깊은 산속 옹달샘’을 위해 정부 예산이나 기업 후원을 받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경력으로 유력 인사들의 후원을 끌어들일 수도 있었지만, ‘깊은 산속 옹달샘’을 예수님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명상센터로 만들고 싶어서 이름 없는 아침편지 독자들의 후원으로만 건립했다. 마치 어릴 적 아버지가 시골 교회를 지으며 지붕을 얹고, 벽돌 하나하나를 직접 옮긴 것처럼, 그 역시 ‘깊은 산골 옹달샘’에 벽돌을 나르고 지붕을 얹는 등 마치 교회를 짓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한다.
세 번째로 받은 유산은 ‘아버지의 기도’이다. 그는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 가면서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점이다. 마더 테레사가 “나는 주님의 손에 들린 몽당연필입니다. 쓰시는 분은 주님이시죠”라고 말한 내용이 아버지의 기도 속에도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고도원이라는 한 사람의 꿈을 통해 <아침편지>가 시작됐고, 이어 ‘깊은 산속 옹달샘’이 만들어졌다. 이는 고도원 한 사람만 행복해지기 위한 꿈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한 꿈이다. 그는 그 꿈은 비단길을 지나면서 생긴 꿈이 아니라 절망의 계곡과 좌절의 길, 맨땅에서 키워진 꿈이었다고 고백한다.


독서의 힘 - 기자·대통령 연설 비서로
그는 어머니의 서원 기도대로 연세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장학생으로서 교수들로부터 촉망받던 목회 후보생이었지만, <연세춘추> 기자를 하면서 글 쓰는 일에 홀딱 빠져 버렸다. 어릴 적 독서를 통해 잠재된 자양분이 글 쓰는 데 탁월한 끼로 발휘됐다. 이때부터 신학 공부는 손을 놓고 F학점만 받아 심지어 ‘F선상의 아리아’라는 글까지 썼을 정도다. 그러다가 유신정권의 필화사건을 계기로 긴급조치 9호에 걸려 학교에서 제적되고 강제 징집을 당했다.
그 후로는 이력서를 써도 받아 주는 곳이 없었다. <연세춘추> 시절 꿈꾸던 신문기자로서의 꿈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7년 연애 끝에 한 결혼도 단칸방에 전기밥솥 하나 산 게 다였다. 포장마차에 문방구까지 시작도 못 하고 사기당한 사업 때문에 6개월간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새까맣게 꼬챙이처럼 말라 갔던 시절도 있었다. 이때 웨딩드레스 대여 사업을 하다가 글이 너무 쓰고 싶어 대학을 졸업했다고 속이고 면접을 본 후, <뿌리 깊은 나무> 창간 잡지기자가 되기도 했다. 잡지기자를 하면서 그가 보관해 온 독서 카드와 밑줄 친 책이 그를 좋은 글쟁이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는 결국 강제 폐간을 당했다.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당시 <뿌리 깊은 나무>의 애독자였던 중앙일보 경제부 부장이 끼 넘치는 그의 글솜씨를 평소 유심히 보고 그를 언론 고시도 없이 신문기자로 채용했다. 그는 중앙일보 사건기자를 거쳐 정치부 전문기자 생활을 했다. 텃세 심한 언론사의 이방인이었던 그가 승승장구한 데도 역시 어린 시절부터 습관을 들인 독서가 큰 힘이 되었다.
당시 그는 평민당 출입 기자들과 김대중 총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책 이야기를 하던 중 김대중 총재가‘내 인생의 책’으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꼽았다. 마침 15번이나 이 책을 읽은 기자는 그뿐이었다. 많은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언론인과 정치인 두 사람 사이에 두세 시간 동안 책에 대한 쫄깃쫄깃한 대화들이 오갔다. 이때 그를 인상 깊게 본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으로 스카우트했다. 그의 꿈 중 하나가 바로 글로 역사에 남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것은 언론인으로서, 글쟁이로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과중한 연설문 작성,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탈출구
그는 5년 동안 한자리에서 당대 최고의 문필가, 연설가, 다독가, 철두철미한 기억력을 소유한 김대중 대통령의 검열을 받으며 연설문을 하루에도 3건씩 써야 했다. ‘커피머신’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연설문을 그때그때 작성해 나갔다.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던 그는 결국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탈진해 버렸다. ‘딱 3시간만 살아 있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이 생길 정도였다. 건강이 무너졌고, 강제 급정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기름이 떨어졌는데 계속 쓰니 차가 멈춰 버린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의미 있고 기쁜 일을 하고 싶어졌다. 어느 날 독서할 때 밑줄 친 내용을 다시 읽으면서 정리하다가‘한 줄의 짧은 글귀’가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깨닫게 하며, 삶의 방향을 바꾸게 하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1년 8월 1일 이메일 주소를 알고 있던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희망이란’이라는 제목으로 메일을 보낸 것이 <아침편지>의 첫 시작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냉혹하게 받은 독서훈련과 글쓰기 직업이 가져온 독서량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매일 좋은 글들을 선택해 적고, 자신의 느낌을 적어 짧은 편지 형식의 이메일로 전달했다. 마침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인터넷이 발달한 즈음이라 더욱더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보편화되어 다양한 형태의 인터넷 편지가 나오고 있지만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는 이메일 매거진 형태의 특허까지 받았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매일 아침 비타민을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독자, 자살을 하려다가 삶의 의지를 되찾은 40대, 꿈을 찾고 공부에 다시 매진하게 된 청소년 등 점점 독자층이 넓어졌다. 그러나 처음에는 취미와 봉사로 시작했던 일이 ‘매일 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으로 다가오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했고, 그 독자수가 250만 명에 이르자 아침문화재단을 만들게 되었다.
그는 과거에도 독서를 많이 해 왔지만 특별히 <아침편지>를 하면서는 더 책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는 서점에 가는 것을 ‘책 사냥 하러 간다’라고 표현한다. 목회자가 설교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처럼, 그 역시 <아침편지>를 쓰기 위해 고통의 길을 매일 걷지만 그 길은 보람이 크단다. 그래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소명감을 갖고 이 일을 하고자 한다. <아침편지>와 ‘깊은 산속 옹달샘’ 사역을 통해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몽골에서 말 타기˙세계일주 등 꿈을 현실로
또한 그는 지칠 줄 모르는‘꿈쟁이’이다. 심신이 지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그의 이‘꿈 너머 꿈’을 위해 그의 꿈을 공유한 사람들이 십시일반 기금을 모아 2004년 ‘아침편지 문화재단’을 세웠다. 이 문화재단은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자라고 자라서, 아침편지 가족들의 힘으로 만들어져 공공의 재산으로 대물림할 수 있게 되었다. 과로로 몸을 다친 이후,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프랑스, 인도, 스위스 등 세계적인 명상센터를 모두 여행하면서 비종교적이고 비상업적인 명상센터를 건립하는 꿈을 품었다. 한국에 자연치유 중심지 역할을 할 영성센터를 만들면 훌륭한 보물이 될 수 있겠다는 꿈을 꾼 것이다. 60만 평을 위해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응답해 주셨다. 꿈의 공간이던 아침편지 종합 명상센터‘깊은 산속 옹달샘’건립이 그 열매이다. <아침편지> 독자들 중 건축가, 디자이너 등 각 분야의 달란트를 가진 이들이 참여해 2010년 충주 산속에 아름다운 명상 공동체를 자리 잡게 했다. 하루 명상, 명상 다이어트, 비움과 채움 명상, 꿈 너머 꿈 청년학교, 화려한 싱글학교, 잠깐 멈춤 등 프로그램도 많다.
그는 “도시에서 열심히 살다가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질병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바른 자세와 호흡으로 감사와 사랑을 나누고, 에너지를 얻어 다시 일하는 곳에 가서 목숨 걸고 일하는 생활명상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를 표방하지는 않지만 그의 신앙과 간증이 이 안에서 나오고, 그가 하는 다양한 꿈 사역에서 예수의 향기가 뿜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을 오픈 한 이후, 새로운 형태의 명상센터, 수학여행 코스, 기업연수 프로그램들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제 그의 꿈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떨 때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몽골에서 말 타기나 세계일주 여행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중학교 시절 <징기스칸> 위인전을 읽고 몽골이라는 땅에서 어떻게 세계 최고 지도자가 나올 수 있었을까 궁금했고, 그곳에 가고 싶어졌다. 광활한 초원에 말을 달리고, 깊은 밤 쏟아지는 별을 보면서 한국 청년들에게 호연지기와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북극성 하나를 띄워 주고 싶었다. 이 몽골 캠프는 다녀간 사람들에게 비전이나 꿈, 휴식 등 저마다 결과물은 다르지만 그들의 눈빛이 바뀌고,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었다.


꿈 너머 꿈을 생각하라
그는 현재 하는 사역이 사업으로 치면 망하는 사업인데, 매달 굴러가게끔 기부(donation)하는 이들이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한다. 명상센터에서 1박 세 끼 식사하는 데 2만원이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다. 사람이 많이 올수록 적자다. 매월 56명의 직원 월급을 주는 날이 다가오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말 그대로 실험 지향적이며, 교회와 비슷하다.
그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조언을 한다. 백만장자가 된 후 나누겠다고 하면 그때는 천만장자가 되어야 나눌 수 있다고 말하게 된다며, 지금부터라도 작은 나눔을 시작하라고 말이다. 한 사람의 백만장자보다는 다수의 작은 나눔이 큰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한다. 백만장자의 삶으로 바뀌려면 그 출발이 봉사와 나눔이라는 것이다. 취업의 길이 막힐 때 월급 많이 주는 데 가려고 처세를 부리지 말고, 허드렛일,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두해 혼신의 힘을 발휘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에게는 12가지 꿈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는 이뤄진 것도 있고, 앞으로 일궈 가야 할 꿈도 있다. 그는 말한다. 그 꿈이 이뤄지면 무엇을 할 것인지, 꿈 너머 꿈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고도원의 꿈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기대된다.

Vol.78 201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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