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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읽기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는 가족의 힘 <미나리>(2021)

2021년 08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선댄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0년대 미국 아칸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어느 이민 가정의 이야기가 세계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던 남편 제이콥(스티븐 연)과 무모해 보이는 시도 앞에 불안과 불편을 견뎌야 했던 아내 모니카(한예리)의 충돌이 어느 나라, 어느 세대, 어느 가정이나 겪는 보편적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아칸소에서의 시작은 처음부터 삐걱대는데, ...

꿈과 성과가 없어도, 삶은 가치 있어 <소울>(2020)

2021년 07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애니메이션 <업>(2009)과 <인사이드 아웃>(2015)을 연출했던 피트 닥터 감독의 신작 <소울>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 3:1)라는 섭리를 뒤집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한다. 중학교 밴드부 교사이자 무명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는 삶의 이유가 음악일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어느 날, 유명한 재즈 밴드와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된 조는 반가운 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다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게 된다. 영혼이 된 조는 ‘머나먼 저세상’(Great beyon...

이미지, 그 허상에 대해 <차인표>(2021)

2021년 06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사랑을 그대 품 안에>(1994)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검지를 흔들던 차인표. 그의 이름 석 자를 내건 영화 <차인표>가 나왔다. 영화는 ‘과거의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차인표’라는 대중적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다. 감독은 실제적이면서도 허상인 차인표의 이미지를 마음껏 갖고 놀았고, 배우는 그 놀음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놓는다. 영화의 설정은 간단하다. 90년대를 관통했던 배우 차인표는 오늘도 대중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바르고 젠틀하며 건강한’ 이미지에 부응하고자 매사 ‘진정성’을 갖고 임한다. 진정성을 외치...

밭을 경작해 열매를 얻기까지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2019)

2021년 05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은 2002년 말라위에 찾아온 극심한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풍차를 만들었던 소년, 윌리엄 캄쾀바(William Kamkwamba, 1987.8.5~현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등록금이 부족해 14세에 학교를 중퇴했던 캄쾀바는 도서관에서 미국의 초등학교 교재 《에너지의 사용》을 읽고, 책에 나온 원리를 따라 풍차 만들기에 성공한다. 아프리카 내륙의 말라위공화국은 국토가 척박해 3분의 2가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이다. 먹을 것이 없어 폭동까지 일어났던 작은 마을에서 자연 발생적인 전기로 물을 끌어올려 이모...

잊으면 지는 거니까 <아이 캔 스피크>(2017)

2021년 04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옥분(나문희)은 동네 여기저기를 참견하며 불법 행위 신고를 비롯해 무려 8천 건의 민원을 넣어 공무원들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할머니다. 옥분 할머니의 동네에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박민재(이제훈) 주임이 전근을 오면서 두 사람은 신경전을 펼친다. 어느 날, 박 주임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목격한 옥분은 그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고, 결국 그녀는 민원을 넣던 열정으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쎄시봉>, <시라노 연애조작단>, <광식이 동생 광태>, 등을 연출했던 김현석 감독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는 <아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비트를 느껴봐>(2020)

2021년 03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뉴욕에서 댄서로 살고 있는 에이프릴(소피아 카슨 분)은 브로드웨이의 무대에 서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절호의 기회였던 오디션에서 공연계 거물의 눈 밖에 나는 큰 실수를 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결국 에이프릴은 아버지가 있는 고향 뉴호프에 돌아가 휴식기를 보내기로 한다. 고향에 도착한 첫날, 에이프릴은 처음으로 무용을 가르쳐 준 동네 댄스 스튜디오 선생님 바브(도나 린 챔플린)를 만나고, 선생님은 에이프릴에게 마을 아이들의 댄스 경연 대회 지도를 부탁한다. 심드렁했던 에이프릴은 대회의 결승전 심사자가 영향력 있는 연출가 웰리 웡...

당신이 있어 내가 살 수 있다 <#살아있다>(2020)

2021년 02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느지막이 일어난 준우(유아인)는 카메라를 켜고 듀얼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헤드셋 안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친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켜니 긴급 재난 뉴스가 한창이다. 베란다 밖에는 좀비 떼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일형 감독은 인터뷰에서 <#살아있다>와 다른 좀비 영화의 차이는 ‘감정의 공유’에 있다고 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언제 좀비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쫄깃한 심장의 조임이나 물고 뜯는 좀비를 시원하게 처단하는 카타르시스 대신, ...

타인의 취향 말고, 나의 취향 <소공녀>(2017)

2020년 12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세계 명작으로 손꼽히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소설 《소공녀》에서, 주인공 세라는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언제나 품격을 잃지 않은 당당한 모습으로 교훈과 감동을 선사한다. 전고운 감독이 연출한 영화 <소공녀>는 미소(이솜)라는 인물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이런 소공녀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질문한다. 2년 차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미소는, 성심성의껏 청소를 하고 받은 일당을 월세와 세금, 약값으로 저금하는 성실한 인물이다. 별다른 욕심 없는 그녀에게 포기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

부딪혀도 또 뭉치는 가족의 비밀 <남매의 여름밤>(2020)

2020년 11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이삿짐이 실린 아빠의 봉고차에 몸을 실은 중학생 옥주와 남동생 동주는 할아버지 댁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병색이 짙어졌다는 소식에 남매의 고모 미정도 들어온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다섯 명은 무더운 여름을 함께 보내게 된다.  2015년 영화 <불꽃놀이>를 연출하고, <남매의 여름밤>으로 첫 장편 데뷔를 한 윤단비 감독에게는, 평범한 일상에서 감지되는 작은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는 특별한 눈이 있다. 병기는 낮잠 자는 아들을 보고 어렸을 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장난과 같은 장난을 치고, 배우자...

고양이와 함께한 절망 탈출기 <내 어깨 위 고양이, 밥>(2016)

2020년 10월 박일아(영화 평론가)

런던 시내에서 버스킹으로 생계를 이어 가는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벌이도 시원찮은데다가, 허름한 차림새와 지저분한 몰골 때문에 언제나 사람들에게 내쫓기기 일쑤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제임스는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밥’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자기 전재산을 들이고 밥에게 먹을 것을 챙겨 준다. 그 후로 길고양이 ‘밥’은 제임스의 버스킹에 함께하며, 특유의 친근감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밥’으로 인해 제임스는 평생 한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따뜻한 환호를 경험하며, 약물 중독 치료와 재활의 의지를 다진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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