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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새 시대의 기초는 어떻게 다질 것인가?

2018년 02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느헤미야 12장 1절~13장 31절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 이후 공동체를 향한 느헤미야, 학개, 말라기의 가르침에는 현실의 압박으로 영적 궤멸 상태에 있던 백성의 회복을 위한 선포가 주를 이룹니다. 이 같은 메시지는 미래를 향한 선포인 동시에 오늘날을 향한 선포이기도 합니다. 결국 새 시대는 이미 도래했으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 시대를 위한 기초는 지금 바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느헤미야를 통한 새 시대의 기초(느 12~13장)
느헤미야 선지자는 학개와 말라기 선지자에 비해, 가장 후대에 사역했습니다. 학개는 다리오 1세 시기(주전 522~486년)에 활동했고(참조 학 1:1), 말라기는 성전 완공(주전 516년) 이후여서 느헤미야와 동시대 또는 그 이전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느헤미야의 성벽 완성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의 집’ 재건 사역은 학개와 말라기 선지자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시대를 초월해 자신의 백성을 위해 준비하고 계셨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벽 완공 이후 준비하신 계획 중 하나가 제사장들을 준비시키신 일입니다(12:1~26). 12장에는 1, 2차 포로 귀환부터 3차 포로 귀환을 주도했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집’을 이루기 위한 성전과 성벽 완공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구성원들까지 준비하고 계셨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정결’(타헤르)과 ‘즐거움’(심므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레위 사람들과 함께 성벽 봉헌식 준비에 즐거움으로 참여합니다(12:30). 바로 여기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물론, 백성과 성문, 성벽까지도 정결하게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12:43).
이는 죄로 인해 무너졌던 ‘하나님의 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함이 드러나야 함을 뜻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렇게 정결한 모습으로 준비한 자들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큰 제사를 드리며 즐거워했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위해 십일조로 섬기는 일에도 기쁨으로 참여합니다(12:43~44).
이처럼 모든 이들이 맡은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며, 구별된 것을 드리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과거 성벽 공사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입니다. 하지만 새 시대의 기초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 제사장들과 백성은 스스로 구별되고, 구별된 것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이 같은 구별에 대한 강조는 13장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납니다. 성벽을 봉헌하는 날에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책 중에서 “암몬과 모압 사람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라는 구절을 듣게 됩니다(13:1, 참조 신 23:3~5). 결국 그들은 말씀에 따라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분리하기로 결정합니다(13:3).
그러나 이 같은 결정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느헤미야 마지막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백성이 십일조로 드린 제물들을 보관하는 방을 내 준 것입니다(13:4~5).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급히 달려와, 성전 안에 있는 도비야의 물건들을 밖으로 내던집니다(13:6~8). 이 일로 느헤미야가 심히 근심했다고 본문에 표현됐는데, 이는 느헤미야의 마음인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백성은 자신들의 십일조 사용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게 됐고,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생업을 위해 도망가는 일까지 벌어집니다(13:10). 그뿐 아니라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으며(13:15~21),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낳은 자녀들은 유다 말이 아닌 아스돗 방언을 하는 일도 일어났고(13:23~24), 심지어 대제사장의 손자가 성전 건축을 방해했던 산발랏의 사위가 되는 일까지 발생합니다(13:28).
이처럼 느헤미야는 최선을 다해 공동체의 기초를 바로 놓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고백만 남깁니다. 성벽을 완공하고 백성의 회개와 기쁨으로 드린 예배가 있다 해도 삶 가운데서 구별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학개를 통한 새 시대의 기초(학 1~2장)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539년에 바사의 통치자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이 함락되면서 삶의 변화를 맞이합니다. 주전 538년 고레스 칙령 이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귀환이 가능해졌고, 성전 건축도 허락받습니다.
그런데 성전 재건 공사가 주변의 방해로 고착 상태에 빠지자 그들은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 이후 왕위에 오른 다리오 왕 시대(주전 520년)까지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새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 대표적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방해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해결하지 않은 채 자신이 거주할 집에만 집중하고 성전을 방치한 일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1:4).
학개는 하나님께서 이런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질책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백성에게, “어찌하여 성전의 황폐함을 그대로 두느냐?”라고 강하게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십니다(1:8).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너희의 행동을 살피라”(1:5, 7)는 명령에 대한 첫 번째 요구 사항입니다. 그들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후에 행동하게 하시지 않고,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않았던 때’(2:15)를 주셨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인해 정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통해 이방 신들을 자신의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가져왔고, 이를 여호와와 겸해 섬기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새 시대에는 더 이상 이런 이유와 상관없이, 여호와를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선포합니다(1:13). 비록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는 자들의 눈에는 이 성전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내가 너희와 함께할 것이므로 마음을 굳세게 하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는 것이었습니다(2:3~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신 부분은 명확했습니다. 스스로를 거룩한 백성이라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말고, 성전 지대 쌓던 날을 기억해 자신을 바로 세우며,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2:10~23).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새 시대의 기초를 온전히 쌓는 길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나무를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 집중하기를 원하시지, 내 집부터 마련한 후에 주님을 섬기겠다는 신앙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말라기를 통한 새 시대의 기초(말 1~4장)
말라기가 기록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용을 토대로 보면 주전 516년 성전 건축 이후 시대로 예견됩니다. 또한 말라기에 기록된 내용들인 정결한 삶의 본을 보여야 할 제사장들의 부패,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하나님의 백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 십일조를 내지 않음에 대한 경고들을 통해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와 동시대의 인물임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말라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여섯 가지 경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 시대의 기초가 무엇인지 드러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말씀하시며,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사랑에 대해 강조하십니다(1:2~5).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마지못해 드리는 정결하지 못한 제물이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깬 행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8).
셋째, 이방 여인의 딸과 결혼하는 행동은 물론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고 이혼하는 행위에 대해 정죄하셨습니다(2:10~16).
넷째, 간음과 거짓 맹세 등 여러 비도덕적 행위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이 부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17~3:6).
다섯 째,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일은 의무이자 하나님 나라의 창고를 채워서 받게 되는 은혜의 통로로, 이를 온전히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3:7~12).
여섯 째,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입증하시겠다고 밝히셨습니다(3:13~4:3).
이처럼 말라기를 통해 주신 경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무엇을 세우기 원하시는지를 정확히 깨닫게 합니다. 즉 말라기의 종말 지향적인 윤리 강조는 정의와 공의, 신실을 바탕으로 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신의 백성에 대한 선택적인 사랑까지 포함해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세우기 원하시는 왕조의 통치 이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새 시대가 그냥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이미 새로운 시대는 시작됐고,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맡은 우리에게 지금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새 시대의 기초를 위한 노력은 말씀을 통해 이미 예언됐고, 하나님께서는 이전부터 이 일을 행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랍니다.

Vol.157 201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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