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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슬픔, 폐허, 적막, 멸망 앞에 서다

2017년 11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열왕기하 22장 1절~25장 30절

므낫세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참조 왕하 21:11~12). 거룩함을 버린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극에 달해 예루살렘은 자신들이 의지했던 강대국에 의해 완전히 유린당하고 맙니다. 결국 하나님의 임재로 ‘영광’이 충만했던 예루살렘은 ‘슬픔, 폐허, 적막, 멸망’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피’로 흥건한 곳이 됩니다. 만일 이런 일들이 우리 앞에서 펼쳐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요? 무너진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덧입기 위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본문을 통해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전무후무했던 요시야의 개혁(왕하 22:1~23:30)
요시야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다윗의 길로 행했던 남유다의 16번째 왕입니다. 그는 즉위 18년째 되던 해에 성전 보수를 위해 힘쓰다가, 율법을 기록한 책을 발견합니다(22:8).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당연히 율법을 기초로 통치해야 했지만, 요시야 때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간 유다의 역대 왕들과 백성이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본질에서 벗어난 유다 백성의 민낯을 직면한 요시야는 충격에 빠집니다(22:10~11).
이후 요시야는 율법 준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언약의 내용을 듣게 하며(23:1~3), 성전에 있던 모든 우상들과 기구들을 불사르고, 산당을 과감히 제거합니다(23:4~8). 또한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은 보존해 백성에게 말씀의 성취를 깨닫도록 했으며(23:16~18), 율법대로 유월절을 온전하게 지켰습니다(23:21~23).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3:25). 이와 같이 요시야는 전무후무한 개혁을 실시해 율법이 제시한 가장 이상적인 왕의 모습으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므낫세로 인한 죄악의 뿌리가 워낙 깊었기 때문에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23:26~27). 이 같은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함을 지키고 말씀을 우선시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요건입니다.


거듭된 범죄로 인한 멸망(왕하 23:31~25:30)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아버지와 달리 악을 행합니다(23:32). 그는 왕위에 오른 지 석 달 만에 애굽으로 끌려가 죽습니다. 그를 이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이 애굽 왕 느고의 섭정하에 왕이 되는데(23:34),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에게 대패해 바벨론의 간섭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야김이 바벨론을 배신하자, 유다는 더 많은 이방 족속으로부터 침략을 당합니다. 이처럼 므낫세의 죄악이 계승된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방 족속을 통한 징계였습니다(24:1~4).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24:8~9). 하나님의 진노는 극에 달했고, 결국 느부갓네살 재위 8년째 되는 해에 성전은 훼파됐으며, 유다의 왕과 왕족, 신하를 비롯해 모든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24:10~16). 여호야긴을 이어 그의 숙부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르지만 그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합니다(24:17, 19).
시드기야의 최후는 참혹했습니다.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자식들은 그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는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25:1~7). 그 후 바벨론 왕의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성전과 왕궁을 완전히 파괴하고, 그 안에 있던 모든 기구를 수탈합니다(25:9~17).
이후 유다는 친바벨론 성향을 지닌 그달리야가 관할합니다(25:22). 그는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평안한 길이라고 주장했던 자였습니다(25:24). 하지만 그는 동족인 이스마엘과 부하 10명에 의해 목숨을 잃어 자신의 주장이 정답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합니다(25:25~26). 이는 유다 백성의 평안이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다루시기 위해 바벨론을 사용하신 것이지, 바벨론이 의로워서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유다 백성을 징계하셨지만, 이 징계도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하려는 하나님의 긍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열왕기 저자는 여호야긴의 갑작스러운 신분 변화를 마지막에 언급합니다. 37년을 포로로 생활했던 지도자에게 일어난 바벨론 왕의 호의(25:27~30)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죄 아래에 있던 유다를 기억하셨고, 다윗과의 언약을 지켜 가기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처럼 참된 소망과 평안은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세상을 의지하는 순간, 세상이 주는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직 소망과 평안은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고 신실하신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사라진 예루살렘의 영광(애 1~2장)
예레미야애가는 바벨론에 함락된 예루살렘 성을 예레미야가 보며, 과거에 범했던 죄악에 대한 민족적 회개를 시로 승화시킨 책입니다. 저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가장 타당하게 여겨지는 예레미야 저작설을 기초로 본문을 살핍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향해 극심한 슬픔을 표현합니다. 그는 ‘딸 시온’(1:6)이었던 예루살렘이 ‘과부’,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됐다고 설명합니다(1:1). ‘고귀하고 존귀했던 자’가 ‘슬픔과 고통으로 살아가는 자’가 됐음을 뜻합니다.
또한 시온의 도로에 대한 상황을 ‘적막’(1:1, 4)으로 설명해, 예루살렘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죄 때문에(1:5, 8) 예루살렘은 이전에 누렸던 ‘영광’ 대신 ‘업신여김’을 받게 됐으며, 예레미야는 이런 마음을 극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의인화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1:11b~16).
예레미야는 하나님과 유다 백성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고 강조했지만,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거둘 수는 없었습니다(2:1~8). 이는 유다가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했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해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은 사라지고, 유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습니다(2:15~16). 이처럼 예루살렘이 겪는 참혹함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눈물로 드리는 기도(애 3장)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느낍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실은 부르짖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3:8,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 에무나: 단단함, 꾸준함, 버팀)이 크시도소이다”라는 사실을 노래합니다(3:22~23). 이를 통해 유다 백성은 다윗의 언약을 파괴하려 해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언약을 지키시는 한결같은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의 길임을 선포합니다(3:40). 여기서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나님께 들어야 한다”라고 고백하는데(3:41), 이는 영과 육의 주권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이양돼야 하나님의 진노를 해결하고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만일 이런 회개가 없다면, 하나님께 어떤 긍휼을 구해도 결코 상달되지 않을 것입니다(3:44). 이처럼 우리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그분 앞에 회개를 통한 주권 이양이 선행돼야만 우리의 기도가 상달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 구하는 긍휼(애 4~5장)
예레미야는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예루살렘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봅니다(4:1~2). 한마디로 굶주림에 허덕이고, 육신은 쇠약해졌으며, 모든 것이 피폐해진 상황, 그 자체였습니다(4:3~10). 이 모든 것은 거룩함을 잃고 죄를 범한 결과입니다(4:6, 13).
그들은 하나님보다 애굽을 의지했기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사용해 그들의 자유를 빼앗으셨습니다(4:17~19). 이런 상황에서 바른길을 제시해야 할 왕도 함정에 빠져 아무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4:20).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합니다. 슬픔 속에 빠진 백성은(5:15~16)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살피셔야만(5:1) 살아날 수 있음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5:2~10), 대적들에 의한 치욕(5:11~14), 사회 전반이 무너져 있는 상태(5:15~18)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하늘 보좌를 흔드는 기도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5:21).

‘슬픔, 폐허, 적막, 멸망’이라는 단어 앞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도 이러한데, 하나님의 임재로 영광스러웠던 곳을 스스로 허무셔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기에 앞서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녀에게 고통을 주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눈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할 때, 우리 곁에서 눈물 흘리시며 그 모습을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Vol.154 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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