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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죄와 심판의 역사 속에서

2017년 09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열왕기하 8장 1절~14장 25절

분열 왕국 시대는 ‘죄와 심판의 역사’로 정리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결과 심판이 일어나고, 심판 이후 왕위에 오른 왕도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와 심판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에 대해 긍휼함을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과 회복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납니다.
왕들의 이야기인 열왕기서를 통해 죄와 심판의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와 심판 가운데서 빛나는 등불(8장)
불순종하는 왕들과 달리 순종의 결과가 은혜임을 보여 주는 수넴 여인을 8장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현재 가진 모든 것을 두고 블레셋 땅에 가서 7년의 기근을 피하라는 엘리사의 말을 따르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7년 이후의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엘리사의 말을 믿은 그녀는 결국 모든 소유를 회복하게 됩니다(2~6절). 
한편 아합 왕조에 대한 심판이 엘리사를 통해 이어집니다. 엘리야를 통해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참조 왕상 19:15)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됐고, 결국 아람의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왕위에 오릅니다(15절).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어질 때, 유다 왕 여호람과 그의 아들 아하시야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는 죄를 범합니다. 이들은 아합의 집과 같은 죄를 범합니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고(18절), 그의 아들 아하시야 역시 아합 집안의 사위가 되는데(27절), 이는 아합 가문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맞서는 매우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에게 ‘등불’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십니다(19절). 물론 죄에 대해서는 단호하셨기에 에돔과 립나의 반역으로 여호람이 왕위를 아하시야에게 넘겨야 했지만(22, 24절),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패망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자신의 백성을 위한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예후의 개혁과 순종, 그리고 한계(9~10장)
엘리사는 청년 선지자를 군대 장관 예후에게 보내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삼았으며, 아합의 집은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습니다(9:6~10). 갈멜 산 전투로 지쳐 있던 엘리야에게 아합 왕조를 심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이 또 한 번 성취되는 순간입니다(참조 왕상 19:16~17).
예후가 기름 부음을 받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앞다퉈 예후에게 왕의 예를 표했으며, 예후도 요람을 향해 칼끝을 겨눕니다(9:13~14). 요람이 예후의 무리가 적군인지 아군인지를 분별하기 위해 “평안하냐?”라고 묻자,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로 인해 어떻게 평안할 수 있느냐?”라고 답하며 그를 죽입니다(9:17~24).
요람을 죽인 예후는 유다 왕 아하시야도 죽이고(9:27), 이스르엘로 와서 이세벨도 죽입니다(9:33). 결국 이 모든 과정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이세벨과 계획해 탈취했을 때, 엘리야를 통해 예언됐던 하나님 말씀의 성취입니다(참조 왕상 21:29). 결국 바알 신앙으로 아합을 도와 북이스라엘 왕조를 실질적으로 꾸렸던 이세벨은 죽어서도 개들의 먹이가 되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9:35~36).
이어 예후는 사마리아에 견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아합의 아들 70명 중 가장 뛰어난 사람과 대결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사마리아 귀족들에게 보냅니다(10:1~3). 편지를 받은 귀족들은 아합도 죽은 마당에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며, 스스로 예후의 종임을 밝히고 왕자 70명을 죽여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 보냅니다(10:4~7).
예후는 계속해서 아합과 관련된 모든 자들을 죽였고(10:11), 사마리아로 가던 중에 양털 깎는 집에 있던 아하시야의 형제 42명도 모조리 죽입니다(10:12~14). 이후 그는 자신을 맞이하러 온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손을 잡고 사마리아로 진격해 아합의 세력을 진멸합니다(10:15~17). 그리고 바알에게 드릴 큰 제사를 준비한다는 명분으로 잔치를 열어 모든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에게 예복을 입혀 구분할 수 있게 한 후, 그 자리에서 바알 숭배자들을 몰살합니다(10:18~25).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쓰임받은 예후도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를 떠나지 못해 그의 자손 4대까지만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한계에 직면합니다(10:30). 분명한 사실은 예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아합 가문과 바알 신앙을 완전히 소탕하셨지만, 이렇게 쓰임받던 자도 자신의 이익에 갇히게 되면 결국 개혁의 주체에서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조의 개혁 그리고 한계(11~12장)
죄와 심판의 역사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관계를 위해 여호람과 결혼합니다. 이후 예후의 개혁으로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이 멸망하고, 남유다에서도 자신의 아들 아하시야가 살해되자 아달랴는 스스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는 아달랴 자신이 아합으로 대표되는 오므리 왕조의 부활을 책임지기 위함임과 동시에, 다윗의 씨를 말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윗 왕조에 위기가 닥친 순간 아하시야 왕의 누나이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구해 성전에서 6년 동안 지켜냅니다(11:1~3). 이후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에게 왕관을 씌운 후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옹립합니다(11:9~12).
결국 아달랴는 여호와의 성전 밖에서 죽게 됐고(11:16), 여호야다에 의한 개혁은 계속됩니다. 그는 왕과 백성에게 여호와와 언약을 맺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했으며, 바알 우상 제거 및 바알 제사장들을 죽이는 일로 다윗 왕조를 이어가시겠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습니다(11:17~18).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는 동안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합니다. 그는 왕이 되자마자 훼손된 성전을 수리하고 재건하도록 명령합니다(12:5). 하지만 성전 수리 작업이 여호야다와 제사장들의 무관심으로 23년 동안이나 미뤄지자, 요아스는 백성이 직접 성전 수리 헌금을 드리게 하는 형태로 개혁합니다(12:7, 13~15).
결국 여호와의 성전도 잘 보수됐고, 제사장들도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을 중심으로 한 요아스의 정책들은 유다에 평안을 가져왔지만, 아람 왕 하사엘이 침략하자 요아스는 그를 달래기 위해 성전의 모든 성물과 금을 넘겨주는 잘못을 범합니다(12:17~18).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요아스 정도면 잘한 왕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아스가 산당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대신합니다(12:3). 결국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않으면 한계에 직면하게 되며, 죄와 심판의 역사 속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남북 왕조에 흐르는 죄의 역사(13~14장)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의 죄가 여전히 흘렀으며, 남유다에는 다윗 같은 이가 없는 암흑의 시대가 계속됩니다.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도 여전히 여로보암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아람의 손에 맡기십니다(13:1~3).
이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간구해 환란으로부터 벗어나는 듯했으나,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는 잘못을 범합니다(13:4~6). 결국 여호아하스의 백성은 아람의 하사엘과 벤하닷의 손에 멸절됐고, 그 역시 선대와 동일한 평가를 받는 왕으로 남습니다(13:7~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으로 이스라엘에 은혜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아하스에 의해 뺏겼던 성읍들이 요아스 시대에 회복됩니다(13:23~25). 사실 요아스도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은 왕이었습니다(13: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아스를 통해서라도 구원을 베푸시려고 죽을병에 걸린 엘리사를 통한 구원의 손길을 예비하십니다(13:17~19).
엘리사가 죽고, 요아스가 즉위한 지 2년에 남유다에서는 아마샤가 왕위에 오릅니다(14:1).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는 정직히 행했지만, 산당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 다윗과는 같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14:3~4). 이후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신감으로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와 전쟁을 치르다가 패했고, 반란을 일으킨 자에 의해 살해당합니다(14:19~20, 참조 대하 25:27). 요아스가 개혁의 한계를 드러냈듯이, 그 아들 아마샤도 한계를 드러냅니다.
아마샤 재위 15년에 북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 2세가 등장합니다. 그는 하맛 입구에서 남쪽의 아라바 바다까지 아람에게 뺏겼던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합니다. 사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람에게 학대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14:23~27). 이처럼 남북 왕조의 반복되는 죄악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회복을 기다리며 일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을 향해 내리시는 징계는 그 백성이 구원의 역사로 돌아오길 바라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죄악과 심판의 역사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은 반복적으로 드러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긍휼을 통한 회복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죄 범한 백성이 돌아오기만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억하며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Vol.152 2017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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