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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진리를 대하는 사도의 자세

2017년 07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디도서 1장 1절~3장 15절

바울에게 있어 복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차 전도여행을 다녀와서 기록한 갈라디아서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 사역을 마무리할 때 쓴 디도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믿음만이 구원에 이르게 한다’라는 진리는 당시에 널리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여전히 율법이 중요했고, 이방인들에게는 복음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살아 있는 복음을 갈라디아교회의 성도들과 디도라는 목회자를 통해 나누길 원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추구한 살아 있는 복음은 1세기에만 통용됐던 가치일까요?


포기할 수 없는 진리(갈 1~2장)
바울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사도 됨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음을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밝힙니다(1:1). 이는 자신이 사도가 된 이유가 사람으로부터 난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믿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다른 복음’ 때문에 혼란 속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율법의 중요성을 경시했다고 주장합니다(1:10).
그러나 바울은 이 같은 모함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유대교에 대한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과거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사도로 살아가는 지금의 자신은 존재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사도로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은 감추고 싶었을 텐데, 솔직한 고백을 통해 바울의 진정성은 더욱 드러나게 됐습니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회심 후 3년이 지난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과 자신이 핍박했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 성도들의 소식을 나누며 그 가치를 더욱 발합니다.
바울이 베드로와 나눈 15일간의 짧은 교제(1:18)는 그의 사도권이 예루살렘교회 사도들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해 주며,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 성도들이 바울을 통해 기뻐한다는 소식(1:21~24)도 더 이상 예수님을 핍박했던 바울의 모습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삶을 통해 자신의 사도권을 증명했고,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삶의 변화를 통해 그의 메시지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14년이 지난 후 바울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2:1). 바울은 ‘계시를 따라’ 방문이 이뤄졌다고 말합니다(2:2). 이를 통해 자신의 방문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계획이었음을 드러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하는 것과 동일한 복음임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사역이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합니다. 또한 예루살렘교회 사도들도 헬라인인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기에 사도 된 바울의 권위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베드로가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에 유대인이 등장하자 피하는 일이 일어납니다(2:12). 베드로가 상황과 환경에 의해 복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일이 생기자,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율법에 대해 죽어 예수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선포합니다(2:21).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다른 복음으로부터 구하려는 바울의 편지는 자신의 사도 됨을 증명하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했습니다.


역사를 통해 증명되는 진리(갈 3:1~5:1)
바울은 복음의 핵심을 이미 맛봤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복음에 휘둘리는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말합니다(3:1~3).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유대인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소개함으로써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성경적으로 증명합니다. 이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게 하신 것이지, 아브라함의 율법적 행위가 그를 의롭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3:6).
물론 율법에는 죄를 분별하는 기능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주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율법 아래에 가뒀으며, 그들이 전한 율법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마치 초등교사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바로잡고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된 자들이 유업을 이어 간다고 설명합니다(3:26~29). 다시 말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율법적 제약들이 철폐됐으며,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고 증명한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실 상속자라고 해도 성년이 되기 전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종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4:1~3).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모두 자유하게 하셨고, 아들의 신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4:4~6). 결국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4:7)
이런 복이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주어졌지만, 그들은 다시 천박한 초등학문에 매여 있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해 바울을 걱정시킵니다(4:8~11). 바울은 다시 한번 선택받은 아들이 갖는 특권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두 아들을 예로 듭니다(4:22~23). 이삭과 이스마엘 모두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둘 다 상속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따라 난 자인지, 육체를 따라 난 자인지에 따라 상속의 유무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듯,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따라 난 이삭에게만 유업을 얻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4:28). 이는 율법을 통해 육체의 한계에 갇혀 있는 자는 유업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한 것이며, 더 이상 율법이라는 멍에를 지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님을 알게 한 사건입니다.


성령을 통해서만 세워지는 진리(갈 5:2~6장)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할례’입니다. 바울은 할례냐 무할례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며, 믿음만이 의로워지는 길임을 주장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만약 할례를 전했다면 박해받을 이유가 없음을 말하며(5:11), 육체의 일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을 권면합니다(5:16~18).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오직 이러한 사람이 이삭과 같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수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라야 양자 됨의 특권을 누릴 수 있으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고 말합니다(5:22~24).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성령으로 행하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이런 이들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눠 지는 모습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거나(6:1), 겉으로 고상한 척하거나(6:3), 남에게 보이려는 행동(6:4~5)을 하는 것은 결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할례를 받았다고 해도 이와 같은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라면, 그는 할례를 자랑거리로만 사용하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갈 상속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디도가 세워야 할 공동체의 진리(디도서)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후, 자신을 이어 그레데 지역에서 사역해야 하는 디도를 위해 편지를 씁니다. 당시 그레데교회는 복음의 순수성과 교회의 질서가 위협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삶으로 복음을 가르칠 일꾼들을 길러 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할례를 중시하는 유대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디도에게 하나님의 청지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장로들에 대한 바른 기준을 전합니다(1:5~9). 또한 각기 다른 연령 및 성별, 다른 계층의 성도들을 향해 바른 기준을 제시하며(2:1~10), 오직 하나님의 교훈 자체를 빛나게 할 선한 일을 가르칩니다.
결국 이와 같이 선하고 바른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가 됐기 때문입니다(3:6~7).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세워야 할 진리란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택함받아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의 본질과 무관한 신학적 논쟁은 삼가며,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9~11).
이처럼 바울은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는 복음의 순수성만을 우선해야 하며, 이를 훼손하는 모든 것들은 본질이 아니므로 멀리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구원의 문제를 율법으로 해결하려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을 버려둔 채 껍데기만 갖고 본질을 왜곡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형식과 틀 속에 갇혀 복음으로 인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도의 삶은 오늘날이나 바울이 살았던 때나 동일하게 진리를 지키기 위한 열정, 자세, 태도를 중시합니다. 가치 왜곡을 통한 본질 파괴가 아니라 가치 보존을 통한 본질 계승이 일어날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가 계속해서 세워지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Vol.150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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