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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영적 전쟁, 누가 주관하는가

2017년 06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열왕기상 17장 1절~22장 53절

이스라엘의 분열은 하나님 존전에서 ‘거룩함’을 상실한 결과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셨지만, 아합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은 오히려 죄악의 정점을 향해 갑니다. 이처럼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을 훈련하시고, 사명으로 무장시키시며, 영적 전쟁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전쟁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누가 물과 불을 주관하는가(17~18장)
열왕기에는 엘리야에 대해 어느 지파, 누구의 아들인지와 같은 전통적인 인물 소개가 없습니다. 길르앗에 살고 있는 디셉 출신이라는 것이 전부입니다(17:1). 당시 길르앗은 숲이 우거져 사람이 살 수 없었으며, 디셉은 성경에 엘리야의 출생지로밖에는 언급되지 않아 파악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세상적으로 유력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인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에게 임하시고(17:2), 그를 아합 앞에 세우시며, 아합이 믿는 바알이 거짓 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바알과의 영적 전쟁을 감당하기 위해 엘리야는 강력한 훈련을 받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 앞 그릿 시냇가로 숨고, 그곳의 물을 마시며,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떡과 고기로 생명을 유지합니다(17:3~6).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고강도의 훈련은 그릿 시냇가의 물이 말라 버리는 상황이 연출되자, 자연스럽게 시돈 지역의 사르밧에서 계속됩니다(17:9). 시돈은 이세벨의 고향으로 바알 신앙의 본거지였으며, 사르밧은 ‘제련하는 곳’이란 의미를 가진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알 신앙의 본거지인 이곳에서 엘리야를 마치 금속을 제련하듯이 혹독하게 훈련하십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움큼과 약간의 기름밖에 없던 과부를 통해 목숨을 연명하게 하시고, 죽은 아이를 기도를 통해 살리시며 생명을 주관하는 참된 신이 누구인지를 엘리야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보이셨습니다(17:16, 24). 그렇게 3년 동안 엘리야를 무장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만 준비시키신 것은 아닙니다. 아합의 왕궁을 맡아 섬기던 오바댜도 선지자 100명의 목숨을 책임진,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18:3~4).
오바댜의 도움으로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불러 누가 참된 신인지에 대한 승부를 가리자고 아합에게 제안합니다(18:16~19). 엘리야의 제안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불러, 제단 위 송아지에 불을 내리는 쪽이 이긴다는 것이었고(18:23~24), 하나님께서는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 여호와 하나님을 목 놓아 부른 엘리야에게 불로 응답하십니다(18:30, 36~38).
이후 바알 선지자들은 기손 시내에서 모조리 죽임을 당했으며(18:40), 바다에서 발생한 작은 구름을 통해 불뿐만 아니라 물을 다스리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18:44~45).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감당할 사람을 준비시키셨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물과 불을 주관하시며 참된 신이심을 선포하십니다.


누가 생명을 주관하는가(19장)
갈멜 산의 영적 전쟁으로 엘리야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합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말에 광야로 도망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자신의 생명을 거둬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생명’(,네페쉬)이란 단어입니다.
엘리야도 생명을 걸었지만, 갈멜 산 사건 이후 백성의 정서가 변한 것을 감안하면, 이세벨도 엘리야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엘리야를 탈진 상태로 이끌었고, 도움의 손길 없이는 꼼짝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그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호렙 산의 만남을 예비하십니다(19:8).
엘리야는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19:9)라는 여호와의 물음에 백성의 언약 파기와 선지자들 중에 자신만 남았다는 고백으로 불안한 마음을 드러냅니다(19:10). 그러나 지친 엘리야의 대답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응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고 명하시며(19:11), 세미한 소리로 다시 한 번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19:13).
영적으로 바닥 상태인 엘리야의 대답은 동일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사명으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여기서 엘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은 길을 돌이켜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 부어 왕으로 세울 것과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할 것, 엘리사에게 기름 부어 엘리야 자신의 뒤를 잇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19:15~16).
또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7천 명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시며(19:18), 영적 전쟁을 위한 동역자들이 있음도 깨닫게 하십니다. 이처럼 영적 전쟁의 후유증은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깊은 침체로 빠져들게 했지만,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통해 택한 자를 다시금 일으켜 세우십니다.


누가 전쟁을 주관하는가(20~21장)
아람 왕 벤하닷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아합은 벤하닷의 요구를 들어주려 했지만, 백성은 아합에게 거부할 것을 요청합니다(20:7~8).
이때 한 선지자는 아합을 찾아가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전쟁의 승리를 줄 것이라고 말합니다(20:13). 이방 신을 섬겼던 아합에게도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깨닫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아합은 지방 고관의 청년들과 함께 왕이 먼저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선지자의 말을 어기는 불순종을 범합니다(20:14, 21).
이후 선지자는 벤하닷이 군대를 정비해 이스라엘을 다시 침공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하나님께서 산의 신이기에 평지에서 싸우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20:22~23),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가 그대로 반영된 사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도 하나님을 깨닫는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경제적 이득을 위해 벤하닷을 살려 줘 또다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합니다(20:31~34).
아합은 뜬금없이 왕궁에서 가까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힙니다(21:2). 나봇은 조상의 유산이기에 팔 수 없다고 아합의 요구를 거절하는데, 이 같은 상황을 살펴본 이세벨이 편지로 장로들과 귀족들을 사주해 나봇을 죽게 했으며, 결국 포도원은 아합의 차지가 됩니다(21:11~16).
하나님께서는 아합과 이세벨의 악행을 더 이상 참지 않으셨고, 엘리야를 통해 참혹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21:19~24). 아합은 메시지를 들은 후 뒤늦게 회개했지만 심판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21:27~29).
이처럼 아합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했는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합은 욕심으로 말미암아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그 대가는 처참했습니다.


누가 이 땅의 통치를 주관하는가(22장)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결혼 동맹을 통해 앗수르와 아람을 견제하며, 함께 길르앗 라못을 정복하려 했습니다. 이곳은 북이스라엘의 땅이었으나, 아합의 아버지 오므리 왕 때에 뺏겼던 곳입니다(2:3). 그런데 여호사밧 왕의 전쟁 준비 방법은 아합과 달랐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확인한 후 전쟁에 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22:5).
이에 아합은 선지자 400명을 추천했으나, 여호사밧은 그들에게서 진실함을 느끼지 못해 아합이 꺼리는 미가야를 요청합니다(22:6~9). 미가야는 아합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것과 모든 전쟁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22:19).
그뿐 아니라 아합이 전쟁에서 죽을 것도 예언하는데(22:17), 아합은 이런 미가야를 핍박합니다(22:26~27). 그러나 미가야의 선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기에, 결국 아합은 한 사람이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죽게 됩니다(22:34~35). 이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욕심대로 통치했던 자의 결말은 너무나 허무합니다.
22장 끝부분에 하나님께 칭찬받은 남유다의 여호사밧과 반대로 아합처럼 악행을 서슴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이 대비됩니다(22:41~53). 두 왕의 모습을 보면 누가 이 땅을 통치하시는 분인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는데, 여호사밧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려고 노력하지만(22:43), 아하시야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합니다(22:52).
물론 여호사밧도 산당을 폐하지 못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습니다(22:43).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려고 노력했던 자이며,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시는 주관자이심을 인정한 왕이었습니다. 반면 아하시야는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노하시게 했던 자였기에(22:53),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더 이상 기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영적 전쟁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하고 억압해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할 때, 온전한 영적 승리를 맛보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진실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골방에서 기도하며, 공동체와 함께 찬양할 때 악은 물러가고 거룩함이 회복되는 승리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Vol.149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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