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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려라, 좁은 문에 들어서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2012년 12월 <우은진 기자>

인물 : 부흥한국 대표 고형원

민족과 열방을 치유하는 찬양사역자
한국 교회 안에서 찬양사역자로 산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대중가수처럼 화려한 무대나 부와 명예가 보장된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 부르는 노래마다 예쁘고 개인적인 위로와 사랑을 주는 CCM도 아니고, 가사 자체가 민족과 열방, 통일과 회개 등 다소 무거운 컨텐츠들을 담은 게 대부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이가 있다. 바로 <부흥>을 비롯해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비전>,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주님 다시 올 때까지>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랑받는 곡들을 만들어 낸 부흥한국의 대표 고형원 전도사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자신이 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도행전 13장 말씀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행 13:36~37).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던 자신이 찬양을 통해 민족과 열방, 하나님 나라를 미력하게나마 섬기게 된 것은 다윗이 그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듯이 지금 이 시대에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뜻에 순종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누군가는 민족과 통일을 위해 섬겨야 하는데, 주님이 그 길로 자신을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마치 인생의 묘비명과 같아 이 말씀을 사모한다는 그로부터 어떻게 찬양사역자가 되었는지 들어보았다.

예수전도단과의 만남, 찬양인도자가 되다
내성적으로 보이는 풍모답게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서울공업고등학교 건축과에 지원했다. 취업도 보장되고, 잘하면 대학도 갈 수 있다는 어른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낙심했고 절망했다. 당시 교회에 나와 주님을 만났는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후 고려대 건축학과에 들어간 그는 막내였지만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예수전도단을 만나고 활동을 하며, 우연히 찬양인도를 해 보라는 제안에 따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찬양인도자로 훈련받게 되었다. 결국 대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예수전도단 사역에 헌신하게 된다.
간간이 작곡을 하며 국내 유명 찬양가수들에게 곡을 주기도 했던 그는 토론토 예수전도단 지부 개척을 위해 1990년 캐나다로 떠났다. 1995년 1월 밴쿠버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한 그는 2년 뒤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은 <부흥>이라는 곡을 만들게 되었고, 이후 이 곡은 급격하게 퍼져 나갔다.
당시 캐나다에서만 활동했기에 <부흥>이라는 곡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감지하지 못했던 그는 10년 만에 캐나다 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당시 <부흥>은 전국 교회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로 시작하는 이 곡은 “주님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로 끝난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만큼 재미가 있거나 사랑이야기를 담은 곡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곡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불려진 이유는 그 시대에 황폐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족과 열방을 향한 작곡을 하게 하시다
귀국 후 여러 교회를 다니며 민족과 열방을 품는 예배를 인도했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지막 때를 위한 민족과 열방을 향한 당신의 뜻을 담은 곡들을 계속 만들게 하셨다.
그는 80년대 혼란스러운 사회분위기에서 데모하는 대학생들과 분신하는 친구들을 목격한 바 있다. 그러나 자신은 그들과 달리 예수전도단 활동을 하며 기도와 중보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려 했다. 단, 자신 역시 그들의 삶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그러던 중 1991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4~50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뜨겁게 기도하며 성찬식을 하던 도중, 한 장로님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던 모습이 민족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바꿔 주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다시 기도하도록 부르시는 것 같았고, 촛대를 옮기지 말라고 기도하던 그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요한계시록 7장 9절 말씀을 묵상하며 또 하나의 찬양인 <비전>을 만들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로 시작하는 이 곡은 9개월의 진통 끝에 탄생했다. 요한계시록 말씀을 붙들고 고민하던 중, 오대원 목사의 설교말씀에서 확신을 얻고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곡을 주로 혼자 있을 때 만든다고 한다. 기도하거나 운전하다가, 또는 말씀을 보다가 하나님께서 자신의 색깔을 바꾸시고, 그분의 노래를 주시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민족이나 북한 선교에 대한 곡들을 주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변이나 북한 현장에 직접 가서 눈으로 보면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처음부터 민족을 품고 기도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모두 하나님이 하셨고, 그는 그 길에 순종했을 뿐이다.

부흥한국을 세우고, 통일코리아를 섬기다
그는 한국이 통일되는 열쇠는 북한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남한 교회를 부끄럽게 하는 순전한 교회를 하나님이 북한에 보존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북한은 유물론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이고, 남한 역시 돈과 야망이 숭상되며 개인주의, 개교회주의가 극심한 상황이다. 그는 남한이나 북한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사실 <부흥>이라는 곡이 나올 당시 모든 선교단체들이 캠퍼스와 세계선교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북한선교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시대적으로 받은 반공교육과 남침에 대한 두려움, 피해당한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 교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 북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통일이 끝이 아니라 선교한국이 되어 열방을 섬기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여러 교회를 다니며 느낀 것은 한국 교회가 개교회주의에 묻혀 있고, 너무 풍족하다”며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함을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한국 교회는 현재 너무 배가 부르고 값싼 성공주의 복음만이 강조되어 불의와 싸울 힘도 없고 타협하기 쉬운 상태”라며 “반면 북한의 지하 교회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정금 같은 믿음의 순수성, 그루터기가 될 믿음이 보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선교한국을 꿈꾸며 그는 2000년 부흥한국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통일과 민족을 품고 뮤지션들을 모아 찬양선교단을 꾸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2004년에는 사랑의교회 대학부와 함께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를 매주 목요일마다 열기 시작했는데 이 기도회는 현재 400회가 넘었고, 강남에 이어 강북지역에서도 쥬빌리 기도회를 드리고 있다. 2008년부터 통일비전캠프를 매년 열고 있다. 요즘은 교회 밖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자 기도하며 곡을 만들고 있다. 이 앨범 제작을 위해서는 수억 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는 “지금도 북한에서는 오래 굶어 면역력이 떨어져 동사하는 어린이들이 많다”며 “북한을 위해 남한이 울어야 하는데 안 울고 있다. 이는 아프지 않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잃어버리면 얻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을 드리면 하나님이 쓰실 것이다”라며 “잃어버리면 얻을 것이고, 얻으려 하면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너무 많은 교회가 풍요의 복음만 강조하며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을 간증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부흥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기도를 통해서 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높은 곳으로 가라’ ‘성공하라’고 하면 세상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나라는 ‘잃어버려라’ ‘좁은 문에 들어서라’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남한 교회가 북한을 향해 어떻게 했는지를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지적한다. 북한 아이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남한 교회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하고 강도를 잡기 전에는 도와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성경적인 교회로 돌아가 북한을 먼저 용서하고 사랑하는 게 통일한국, 열방을 품는 선교한국이 되는 첫걸음”이라고 힘을 주어 말한다.                              

 

Vol.95 2012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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