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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말씀

“여성 선교사의 선구자, 중국을 복음화하다 ”

2012년 07월

로티 문(1840~1912)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1912년은 267년간 지속됐던 중국 청나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해혁명으로 쑨원의 민주주의 사상이 승리를 거두면서 중화민국이 탄생한 해이다. 그리고 배외(排外), 반(反)기독교 결사집단이었던 의화단의 핍박과 전쟁의 위험을 견뎌내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중국인들에게 나눠주었던 한 여자 선교사가 72세의 나이로 눈을 감은 해이기도 하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중국 땅을 밟은 이후로 죽는 날까지 수만 명의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예수 사랑하심은”이라는 찬양을 가르쳐준 로티 문(Lottie Moon). 그는 당시 여성과 외국인에 대한 억압과 경계가 심했던 중국에서 편견을 극복하고, 중국 내 최대 선교 중심지가 된 교회를 세운 선교사였다.  
19세기만 해도 미국 교회에서 여성 사역자의 활동은 혁명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딸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줄 것을 유언으로 남긴 아버지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대학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던 로티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중국 선교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남부 침례교 교회를 이끄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교단 간의 갈등을 목격하고 회의를 느껴 신앙생활을 거부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참석한 캠퍼스 집회에서 다시 복음을 듣고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회심하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로티 문의 기도는 이루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던 그에게 기회가 열려 결국 중국 선교사로 파송된 것이다. 그러나 태평양을 건너 도착한 낯선 땅에서 그는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파란 눈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물론이고, 가난과 전염병, 사상과 사회 갈등 등 여러 가지 불안한 상황이 겹쳐 죽음의 위협과 핍박을 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를 통해 복음을 듣고 훈련받아 교회의 지도자가 된 이들이 중국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열매로 미국에서도 중국 선교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평생 중국을 사랑한 로티 문의 죽음 이후 열매는 계속됐다. 미국 침례교회 안에 해외선교 후원을 위한 여선교회가 결성됐고, ‘로티 문 성탄절 특별헌금’이라는 선교헌금은 지금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박시온 기자>

Vol.90 201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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