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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2019년 12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요한계시록 14장 1절~22장 21절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은 결과를 미리 알고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미 승리한 경기를 녹화방송으로 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달에 묵상할 요한계시록 14~22장의 내용도 종말의 때에 일어날 승리에 관한 일들을 미리 보여 주기에, 이 내용을 아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큰 음녀 바벨론의 위협이 가득한 세상에서도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자임을 기억하고, 어떻게 하면 종말의 때를 지혜롭게 살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구조 이해
11월에 묵상한 요한계시록 1~13장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에 대한 환상 및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계 1~3장),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을 찬양하는 장면(계 4~5장)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일곱 인 심판(계 6장)과 천상에서 승리한 교회의 모습(계 7장), 일곱 나팔 심판에 대한 이야기(계 8~9장)가 전개됐고, 작은 두루마리에 담긴 의미(계 10장)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두 증인을 통한 복음 전파(계 11장)와 악의 삼위일체인 붉은 용과 두 짐승에 관한 내용(계 12~13장)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세우는 자와 그에 반하는 세력과의 극명한 대조도 살필 수 있었습니다.
12월에 묵상할 14~22장은 13장에 언급된 짐승 숭배자들에 대항하는 신실한 성도의 모습(계 14장)과 일곱 대접 심판에 대한 이야기(계 15~16장), 그리고 큰 성 바벨론과 사탄은 반드시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계 17~20장),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에 대한 묘사와 이곳을 통치하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계 21~22장)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이 부르는 구원의 노래(계 14장)
14장에서 어린양을 따르는 십사만 사천이 새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환상적입니다. 이는 13장에 언급된 짐승 숭배자에 대항하는 경건한 반대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순결한 신부’이자,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선포하며,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고백합니다(계 14:1~5).
특히 그들이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 있을 때, 세 천사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세 천사가 전한 소식은 모두 구속과 심판에 관한 내용으로, 창조주에 대한 경배 요청이 바벨론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짐승을 숭배한 모든 자는 반드시 고통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최후 승리가 어린양이신 예수님께 있음을 믿고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계 14:6~13).


일곱 대접 심판에 담긴 의미(계 15~16장)
15장에서는 짐승과 우상을 이긴 승리한 자들이 유리 바다에 등장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 이는 ‘모세의 노래’와 함께 시작된 구원의 노래로, 종말론적 성취뿐 아니라 구원이라는 구약의 소망이 내재돼 있습니다(계 15:1~8).
16장에서 시작된 일곱 대접 심판은 인과 나팔에 이은 마지막 심판으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대접 심판에 의해 종기가 나고, 둘째 대접 심판으로 바다가 피가 되며, 셋째 대접 심판 때문에 강이 피로 변했습니다. 넷째 대접 심판에 의해 해가 불로 사람을 태우고, 다섯째 대접 심판으로 어둠이 임하며, 여섯째 대접 심판 때문에 개구리 같은 더러운 영이 발생했고, 마지막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큰 지진과 우박 재앙이 발생합니다(계 16:1~21). 이 재앙들은 출애굽 재앙과 비슷한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처럼 바로와 같은 완악한 큰 성 바벨론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벨론은 반드시 멸망한다(계 17~18장)
요한계시록 17~20장은 종말의 때에 있을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일어남을 상세히 보여 줍니다. 17장에 등장한 큰 음녀 바벨론은 화려하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창녀로, 로마 제국을 가리킵니다. 당시 로마는 바벨론처럼 교만과 음란으로 가득 차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했는데, 본문에 등장한 음녀가 탄 짐승은 로마의 정치, 종교, 문화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의 상징인 바벨론(로마)은 새 예루살렘과 비교되는 모방된 성으로, 이곳은 거짓으로 가득 찼기에 반드시 패망하게 됩니다.
음녀 바벨론을 향한 심판 장면은 18장에 상세히 기록됐습니다. 큰 권세를 가진 한 천사가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며 바벨론의 죄악을 열거했고, 또 다른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서 죄를 범하지 말고 성을 벗어나라고 명령했습니다(계 18:1~8). 이는 바벨론이라는 세상 구조와 결탁하지 않는 구별된 삶을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또한 바벨론의 물질적 풍요에 편승해 이익을 취하던 자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해 애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세상의 물질적인 부에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가면, 하나님의 심판에 무감각해져 다가올 영원한 심판을 바로 보지 못하게 됨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힘 센 천사가 바벨론을 향해 외친 멸망의 메시지대로 선지자와 성도, 순교자를 살육한 바벨론의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계 18:9~24).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운 분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가 선포될 때에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최후 승리를 경험하라(계 19~20장)
바벨론 멸망 이후, 요한은 하늘에 허다한 무리가 하나님께 찬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통치와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관한 내용으로,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교회를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왔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혼인잔치에 초대받는 사실이 가장 큰 복이요, 고난과 핍박을 인내하며 이겨 낼 원동력(계 19:1~10)이 됩니다.
요한은 열린 하늘을 보며, 예수님을 백마 타고 오시는 심판자의 모습으로 묘사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포도주 틀’은 예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것을 뜻하며, 피 뿌린 옷도 구속이 아닌 심판 때 흐르는 피를 상징합니다(계 19:11~16). 이처럼 예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이뤄지며, 사탄과 그를 따른 자들은 결코 이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반면, 예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죽임을 당한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히 왕의 행위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상속받은 왕의 자격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유업을 물려받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게 될 상속자로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 있는 복을 받은 자(계 20:1~15)입니다.


새 예루살렘에서 누릴 영광(계 21~22장)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환상은 새 예루살렘과 정육면체 모습의 성전,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영원히 거하게 될 에덴동산과 비슷하게 묘사된 새 창조의 광경으로 정리됩니다.
먼저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교체된 곳으로, 이곳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요한은 이 성을 가리켜 ‘남편을 위해 치장한 신부’라고 했는데, 그만큼 순결하고 찬란하며 아름다운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슬픔도 없고, 하나님과 온전히 교제하는 기쁨이 충만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했던 자들은 결코 이곳에 초대받을 수 없습니다(계 21:1~8).
이후 재앙을 담당했던 천사 중 하나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새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형언할 수 없는 언어로 묘사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곳으로 어둠이 없고, 어떤 대적도 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며, 하나님과 어린양과 함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장소입니다. 성 어디에도 저주받은 곳이 없으며,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임재로 충만하기에 항상 기쁨이 가득 차 있는 곳입니다(계 21:9~22: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새 하늘과 새 땅 위에 세워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기대하면서,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며 사는 자가 돼야 합니다(계 22:6~21).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시 108~110편)
시편 108~110편은 다윗의 시로, 대적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시인의 간절함이 드러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나를 대신해 싸워 승리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시인의 간구 가운데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볼 수 있었던 대적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기는 분이 주님이시며, 자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라는 사실은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종말의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영적 전쟁에서 얻게 될 최후 결과는 ‘완전한 승리’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이들은 완전히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과 동행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며, 부족한 나를 통해 새 예루살렘을 세우신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고 교회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과 시편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주실 승리를 기대하며 2019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기를 바랍니다.



Vol.179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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