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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에게 필요했던 고독의 장소

2019년 11월 2주 (2019-11-10)

출처 : - 유진 피터슨, 《자유》 중에서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바울에게 아라비아는 고독의 장소였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동화(同化)와 묵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는 우리 자신이 그리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옷이나 업적이나 좋은 인상으로 우리가 괜찮은 존재임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조종한다.
우리 감정은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우주의 중심에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고통을 당하거나 아픔을 느끼고 있다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 짓도록 우리를 못살게 군다. 우리는 종종 무의식적으로 이런 태도를 지니고 부모님이나 동료로부터 동일한 태도를 전해 받았다. 그런 태도는 그릇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신다. 하나님은 실재하신다. 우리는 아름답게 정돈된 그분의 창조 세계에 치명적인 실수로 태어난 자가 아니라, 계획된 자녀다. 어떻게 습관적인 죄책감과 거부감으로 사는 데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용납의 삶을 사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라비아가 한 가지 방법이다. 그곳은 묵상하고 찬양하는 곳이다. 친구나 가족이나 비평가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진리 속으로 우리를 가라앉히는 시간이다.
조용한 방에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것이 아라비아일 수 있다. 예배가 아라비아일 수 있다. 일상에서 떠난 고독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탐구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세세한 의미를 발전시키고, 하나님의 용납의 의미를 깊이 깨닫는다. 그런 날들과 시간을 통해 새로운 힘이 솟아나고, 자유함을 누리는 기술들이 기능을 발휘한다.
바울에게 아라비아는 느긋하게 묵상 훈련을 하는 시간과 장소였다. 그것은 하나님이 중심에 계시는 새로운 삶의 양식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이 용납받은 존재이고, 가벼이 여행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음에 익숙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Vol.178 2019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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