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날마다 솟는 샘물 말씀읽기 성경인물탐구

성경인물탐구

바울, 신뢰의 위기를 소명으로 극복하다

2019년 09월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바울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면서 쓴 이 두 서신은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며 묵상해야 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내용이 복잡하기로 정평이 난 고린도전후서를 왜 바울은 쓰게 된 것일까?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편지를 쓴 의도를 알아보자.


믿음 가운데 서 있었으나 혼미해진 고린도교회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헤아리기 위해서는 먼저 고린도교회의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고린도교회는 분명 믿음 위에 서 있었다(고후 1:24).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 대한 놀라운 진술을 한 바 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즉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굳게 믿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성령으로 인치셨다고 밝혔다.
그런데 바로 그들에게 불신자에게나 있을 수 있는 복음에 대해 혼미한 현상이 일어났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3~4).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품다
심지어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 11:4).
그들은 왜 이 같은 위기 상황에 이르게 됐을까? 그 이유는 언제부터인가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고후 11:13), 즉 대적자들에 비해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고후 11:5). 분명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위기 중에도 사명을 다한 바울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는 바울이 약해 보였고, 말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고후 10:10). 이 점은 바울도 인정했다.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고후 11:6).
둘째는 바울이 보여 준 재정에 대한 태도였다. 바울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의존하지 않았던 점이 급기야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후 11:9, 11).
셋째는 바울이 당한 고난 때문이었다. 그가 당한 많은 고난이 그를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이 얼마나 유익한 일이었는지에 대해 강하게 논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후 1:9, 4:7, 11:23~27).
바울은 신뢰에 금이 간 위기 속에서도 어떻게 사명을 다할 수 있었을까?
첫째는 소명 의식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고후 1:1). 바울은 언제나 소명 의식이 분명했지만 특별히 사도직에 대해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직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확신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을 사람의 ‘추천서’(고후 3:1)가 필요 없는 새 언약의 일꾼이요, 어떤 고난(고후 6:4)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고후 6:1)로 이해할 뿐이었다.
둘째는 성도의 믿음 성장을 지향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고후 12:15). 바울은 그들의 믿음이 자라고 든든해지는 것을 위해서라면 약한 것을 자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고후 12:9), 환난(고후 1:6), 눈물(고후 2:4), 근심(고후 7:8), 버림받는 것(고후 13:7), 심지어 죽음까지(고후 4:12) 마다하지 않았다.
고린도후서의 바울을 통해 우리도 소명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영혼을 섬기기 위해 사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한다.

*** 이 편지가 오로지 고린도교회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본문은 수신자에 대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고후 1:1)라고 밝혔기 때문에 편의상 고린도교회라고 언급한다.


Vol.176 2019년 9월호

한줄나눔
  • 한줄나눔 :
    * 로그인 하셔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