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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말씀

바울의 변증, 세상을 향한 응전

2019년 09월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본문 : 고린도후서 1장 1절~13장 13절

고린도후서의 저자 바울은 물질주의가 판을 치는 고린도지역에 개척한 교회가 자신이 떠난 후에도 복음이 온전하게 자리 잡기를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반대하는 거짓 사도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적극적인 변론으로 이 문제를 헤쳐 가려고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이 쓴 편지 가운데 가장 개인적인 서신으로 평가되는 고린도후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세상 논리로 무장된 거짓 사도들에 대한 바울의 응전(應戰)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고린도후서를 이해하려면 바울을 반대했던 거짓 사도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합니다. 바울은 처음 편지를 쓸 때만 해도 이들의 공격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개척한 후 그곳을 떠나자, 그들은 고린도교회 내부로 침투합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유대주의자들이라거나 영지주의자, 혹은 헬레니즘적인 유대 기독교 선교사라는 주장이 있지만 정확하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거짓 사도들이 바울의 사도권에 도전해 바울의 사도적 리더십을 무너뜨리려 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오직 복음의 능력을 자신의 사도성의 근거로 삼았지만, 거짓 사도들은 화려한 말솜씨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참된 사도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일이 바울 개인의 착복을 위한 속임수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리하면, 고린도후서는 거짓 사도들에 의해 혼란을 겪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 쓴 편지입니다.



고린도후서의 전체 구조
고린도후서는 총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첫 부분에는 바울의 사역과 목회철학이 기술돼 있습니다(1~7장).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음에 감사하며(1:1~11), 왜 고린도교회 방문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지(1:12~2:4)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도성과 복음에 대한 변호를 통해 사도직의 본질을 언급하며 자신의 목회철학을 밝히고, 자신이 무엇을 위해 힘써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합니다(2:5~6:10). 이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의 변증에 대한 적용으로 애정을 담아 권면합니다(6:11~7:16).
두 번째 부분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한 헌금 문제를 다룹니다. A.D. 40~50년경 흉년으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지속적인 동참을 촉구하는 바울의 권면이 제시돼 있습니다(8~9장).
마지막 부분은 바울을 적대시했던 거짓 사도들을 향해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고린도교회에 세 번째 방문할 계획을 알림으로 마무리됩니다(10~13장).



바울의 사역과 목회철학(1~7장)
바울은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을 높이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위로의 하나님을 노래한 까닭은, 자신이 받은 고난이 그리스도로 인한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1:5).
바울은 고난을 겪으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는 복음 사역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1:1~11).
반면, 거짓 사도들은 고난보다 권세를 소망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 변경에 대해서도 악의적인 평가를 하며 바울을 곤경에 빠뜨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염려와 근심을 끼치는 자로 남지 않기 위해 주님의 길로 인도하려는 조력자의 모습을 보이며 교회를 위해 권면하는 편지를 씁니다. 바울에게는 성도에 대한 사랑이 가장 우선이었으며, 사역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방침이었습니다(1:12~2:11).
바울은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가지고 간 동역자 디도를 만나지 못해 근심하며 마게도냐로 간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다시 마게도냐에 대한 이야기(7:5)를 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인의 삶과 사도로서의 역할을 가르치며, 자신의 목회철학을 밝혔습니다.
첫째,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란 믿는 자들을 생명에 이르게 하고, 믿지 않는 자들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 이 향기를 내는 삶은 하나님 앞에서 제물로 드려진 삶을 의미합니다(2:12~17).
둘째,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표현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쓰신 편지로 지칭하며, 하나님의 뜻이 새겨진 편지답게 새 언약의 직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3:1~18).
셋째,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하며, 자신들의 능력은 오직 그 속에 있는 보배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했습니다. 곧 그 능력은 철저히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4:1~15).
넷째, 바울은 고난과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 겉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짐을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눈에 보이는 현상에 현혹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에 집중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4:16~5:10).
다섯째,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 때문에라도,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사신’이라 칭하며, 화목을 전하는 대사들이라고 선언합니다(5:11~21).
여섯째, 바울은 자신의 동료들을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일꾼’으로 지칭하면서, 이 때문에 환난과 궁핍과 고난도 기꺼이 감당하는 자들이라 설명합니다(6:1~13).
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성전에 비유하며,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6:14~7:4).
이처럼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낮아지고 희생하면서도 복음이라는 보배를 품고 살아가는 자이기에,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바울의 이 같은 목회철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심금을 울렸고, 누가 진정한 사도인지를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연보에 담긴 하나님의 뜻(8~9장)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기록하면서, 예루살렘교회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걷는 일의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이방인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사역에 동참하면서, 유대 기독교인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바울이 생각하는 연보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이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 신실한 자임을 알렸고(8:16~24),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이 고린도교회의 사역을 보며 자극받았음을 인지시키며,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즐겁게 헌금할 것을 권면했습니다(9:1~7).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탄은 여전히 자신의 것을 내놓는 일을 어리석은 행위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전적 위탁을 결단한 자라면 즐겨 내는 것이 영광된 일이며, 섬기는 일이 복된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역자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10~13장)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남아 있는 거짓 사도들을 향한 강력한 변론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바울은 사역자가 의지할 것은 육신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견고한 진도 타파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강조합니다(10장).
또한 그는 거짓 사도들처럼 언변으로 사역하지 않았고, 자신의 출신이나 배경, 받은 고난 등을 내세우지 않았으며(11장), 자신이 봤던 환상과 계시도 드러내 말하지 않았습니다(12장). 그는 오직 목자의 심정으로 고린도교회의 일을 염려하면서, 자신은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드러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약한 것들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어쩌면 바울의 이 같은 모습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무기력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세울 만한 육신의 자랑이 많았음에도 그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았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심령으로 그들을 축복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13장).


이처럼 사역자는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머물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세상은 이런 모습을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믿는 자라면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가장 완벽한 응전(應戰)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복음 제시를 통한 바울의 적극적인 변론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기를 소망합니다. 아직도 육신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며 복음 중심의 사역을 하고 있지 않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탄은 오늘도 전혀 복음적이지 않은 세상 논리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사탄의 공격에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모습을 보여 준 바울처럼, 오직 복음으로 무장해 그리스도인의 바른 정체성으로 능력 있게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Vol.176 201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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